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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섭 미술평론가
선사시대에 만든 '빗살무늬토기'는 유명한 그릇이다. 그릇이라고 했지만 음식을 담았던 것은 아니고, 아마도 저장용이었을 것이다. 빗살로 그린 무늬처럼 생긴 선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지만 의미는 미스터리이다. 이 무늬가 뜻하는 분명한 것 중에 하나는 선사시대 사람들도 비구상을 즐겨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이 비구상을 어려워한다. 뿐만 아니라 뜻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블라디미르 타틀린, 제3 인터내셔널 기념탑, 1919~1920.

 그림은 어떤 대상을 선이나 색으로 종이나 유사한 재료에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것은 구상(具象), 어떤 대상을 그리지 않고 자기 마음속에 내재된(心象) 것을 그린 것은 비구상(非具象)이라고 한다. 정확한 구분은 아니지만 대략 이렇게 구분하면 들어맞는다. 그리고 추상(抽象, abstract는 '추출하다'라는 뜻이고, 추상화라는 의미도 있다)은 어떤 대상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추출하여 그리는 것을 추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흔히 '추상화'라고 부르는 그림들 대부분은 '비구상'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비구상이야말로 어떤 대상도 모방하지 않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으로 드러내는 것이기에 감상자 역시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린 사람이 가진 마음을 알려는 노력 없이 그 사람이 그린 그림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비물질(非物質)상태를 물질로 통해서 다시 비물질로 이해하는 수준 높은 정신활동을 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워낙 추상화라는 말이 득세했고, 어려운 것은 쳐다보지 않으려는 심리가 이런 것을 방해한다.  

 어쨌든, 20세기에 들어서 추상화와 비구상이 현대미술계에 주류가 되었다. 물질적 가치에 대한 탐구에서 드디어 비물질적 가치 혹은 정신적 가치에 미술장르가 눈길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칸딘스키를 뜨거운 추상, 몬드리안을 차가운 추상, 러시아 말레비치를 부르는 절대주의 등이 비구상을 대표하는 사조(思潮)이고 작가이다. 그리고 20세기 비구상에 새로운 영역을 확대한 작가 중에 말레비치와 적대적인 경쟁자이자 친구였던 '타틀린'이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출생의 다혈질인 청년작가였다.

 소비에트연방은 예술에도 목적이 있어야 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레니의 주장에 따라, 그 당시의 작가들은 이를 충족시키는 예술을 해야 했다. 러시아 구성주의 대표작가라고 할 수 있는 타틀린은 스스로 예술가-기술자라고 청하면서 재료와 기술에 무한한 열정을 바쳤다. 그는 파리에 있는 300m에 불과한 에펠탑보다 더 높게, 1919년 볼세비키 혁명 3주년 기념으로 '제3인터내셔널을 위한 기념탑'이라는 작품을 구상했다. 높이는 396m, 바닥에 있는 정육면체는 1년에 한 바퀴, 그 위 피라미드는 한 달에 한 바퀴, 꼭대기는 매일 한 바퀴씩 돌아가게 하는 계획이었다. 여기에는 사무실과 방송국 기능이 있어 실용을 겸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현가능성은 지극히 낮아보였다. 당시의 사회적 경제적 여러 정황상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철이 만든 구조물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것을 감상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가 된 사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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