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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꽃잎 속
                                                                                 
김명리
 
퇴락한 절집의 돌계단에 오래 웅크리고
돌의 틈서리를 비집고 올라온
보랏빛 제비꽃 꽃잎 속을 헤아려본다
 
어떤 슬픔도 삶의 산막 같은 몸뚱어리를
쉽사리 부서뜨리지는 못했으니
제비꽃 꽃잎 속처럼 나 벌거벗은 채
천둥치는 빗속을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내 몸을 휩싸는 폭죽 같은 봄의 무게여
내가 부둥켜안고 뒹구는 이것들이
혹여라도 구름 그림자라고는 말하지 말아라
네가 울 때, 너는 네 안의 수분을 다하여 울었으니
숨 타는 꽃잎 속 흐드러진 암향이여
우리 이대로 반공중에 더 납작 엎드리자
 
휘몰아치는 봄의 무게에
대적광전 기우뚱한 추녀 또한 뱃고동 소리로 운다
 
● 김명리- 1959년 대구 출생. 198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물 속의 아틀라스' '적멸의 즐거움' '불멸의 샘이 여기 있다' 등.

▲ 박성규 시인
한 때 근방에 이름깨나 있었던 우물을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더운 여름날 갈증을 해결할 시원한 우물의 그리움이 가슴에 파고 들어와 종일 우물만 찾아다닌 기쁨이 꽤나 좋았었다. 그러던 어느 때 김유신의 집이라고 알려진 재매정을 찾아 갔다가 뜻밖에 발길을 붙잡은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제비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제비꽃의 색깔은 보라색이고 흰 꽃을 피우는 남산제비꽃, 흰제비꽃, 흰젖제비꽃, 단풍제비꽃 등이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약 22속 900여종이 있다 하며 태백제비꽃은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현재 경주에는 알영정, 나정, 재매정, 탑동 식혜골 김호장군 옛집과 향교에 오래된 우물이 있고, 쪽샘 동네에도 최근의 관광용, 거북 조각이 얹혀 있긴 해도 우물이 있어 옛날처럼 물을 마실 수 있다. 월성, 황룡사, 분황사, 인용사, 포석정에도 신라의 옛 우물이 있다. 이들 우물은 가까운 곳에 있어서 쉽게 다녀오는 코스이기도 하지만 경주의 우물에선 왕들이 태어나고 용이 넘쳐나고 용궁으로 통하며, 역사적 인물과 얽힌 이야기도 많다. 지금까지 발굴된 삼국시대 우물은 260여개이고 그중 경주에만 210여개 우물이 있다고 하니 그 수가 어마어마하지 않는가?
 그런 제비꽃이 아스팔트길과 콘크리트길 사이 틈에서 이리저리 밟히면서도 꽃을 피우지 않겠는가. 애처롭기도 하고 장하기도 하지만 캐어다 옮겨 심을 수가 없어서 더 안타까운 제비꽃이 자꾸만 유년의 추억 속으로 끌어 당겼다. 우물가에 피었으면 좋았을 제비꽃이지만 어쩌자고 그런 곳에 터전을 잡아 마음을 아리게 하는지 봄이 지나가는 4월의 아련한 눈물자국으로 남아 있을, 더 납작하게 엎드릴 것만 같은 제비꽃이었다. 박성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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