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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영 울산예총 사무처장

죽어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슬픈 일이다. 하지만 살아서 대우받지 못한 이들이 저승에서나마 대우받고 웃을 수 있다는 것은 한편 다행한 일이다.

 지난해 화가 이중섭의 삶과 그가 남긴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대한민국 예술계의 핫 이슈가 됐다. 지난해만 두고 보면 대한민국의 예술인(작고한 예술인 포함) 중에서 이중섭 만큼 언론의 조명을 받은 경우가 또 있을까 싶다. 죽어서 꽃가마를 탄 경우가 이에 속한다. 탄생 100주년 기념주화가 발매됐고 그가 남긴 황소그림 이야기는 점점 신화가 되어가고 있다.
 이중섭 뿐만이 아니다. 승려로, 독립운동가로, 시인의 삶을 살다간 만해 한용운 선생은 해마다 만해 축전이 개최되는 8월이면 그의 작품세계와 함께 독립운동, 불교운동,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8월 11일 강원도 인제 하늘내린천변 만해마을에서는 만해축전 2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학술세미나 등 각종 행사가 줄을 이었다. 특히 만해 스님이 남긴 '님의 침묵'은 대한민국 시단(詩壇)의 금자탑으로 평가받고 있다.

 각설하고 올해는 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의 해다. 각 출판사마다 그를 기리는 시집들을 발간하고 있다. 아마 올해 가을은 윤동주의 가을로 인식될 만큼 많은 문학행사들이 열릴 것 같다. 이미 울산에서도 시낭송가들에 의해 그를 조명하는 행사들이 있었다.
 이렇게 죽어서 대우받는 예술인들이 당신이 살았던 그 시절은 어느 누구 못지않게 궁핍한 삶을 살았다. 민중의 삶 또한 그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제 강점기를 살았고 한국전쟁을 겪은 예술인들 모두의 삶은 외롭고 고독한 것이었다. 특히 예술인들은 먹고사는 일이 일대사(一大事)였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암울했던 이 시대를 살았던 예술인들의 궁핍한 삶을 어떻게 단 몇 줄로 표현할 수 있겠냐마는 이중섭처럼 세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예술인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점차 많아지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지난해 가장 뜬 예술인 이중섭의 경우 살아서는 그림을 그릴 종이가 없어서 담배를 싼 종이에 황소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은 지금 세상 사람이 갖고 싶어 하는 귀한 작품이 됐다. 최근 어느 경매 시장에서 이중섭의 그림들이 수십억 원대에 거래됐다는 소식을 보고 놀랐다. 살았을 적에는 단돈 몇 푼을 주고도 사지 않았던 작품들이다.
 십 수 년 전 제주도 서귀포시는 이중섭이 셋방을 살았던 곳을 중심으로 이중섭 거리를 만들었다. 이중섭이라는 소품으로 그가 살았던 마을을 스토리텔링 한 것이다. 그 후로 사람들은 그의 흔적이 궁금해서 서귀포를 찾고 있다. 살아있을 때는 가족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인 이중섭이 죽어서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 하늘의 별이 된 것이다.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에 등장하는 화가 이수근도 마찬가지다. 한국전쟁 당시 입에 풀칠을 하기위해 미군부대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초상화를 그려주고 받은 일당으로 겨우 초근목피를 면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그의 작품들도 크기를 불문하고 점당 수십억 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하니 놀랄 일이다.

 울산의 예를 들면 참으로 안타까운 것들이 너무 많다. 특히 화단에서 차일환 화백이 그렇다. 올해는 그가 작고한 후 유작전이 열린 1997년 3월21일을 기준해서 20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이력을 돌아볼 수 있는 도록이나 팸플릿 한 장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던 차에 최근 차 화백의 유작전 팸플릿을 간신히 구했다. 귀한 보물이 따로 없었다. 울산 무용의 뿌리라고 하는 이 척 선생의 경우에도 그가 사망한지 올해로 7년이 지났는데 그가 활동했던 시절의 다양한 자료들이 많이 소실돼버린 상태다.
 그나마 오영수 선생은 울산에서 꽃가마를 탄 대표적 예술인에 속한다. 울산매일이 오영수 문학상을 제정, 시상한 것이 24회째 이어져오고 있다.
 또 동요작가 서덕출 선생을 기리는 행사로 수년전부터 울산신문사 주관 동요축제가 열리고 있다. 울산이 산업수도로 품격 높은 문화도시를 창조한다는 것에 비추어보면 이런 현상에 대해 할 말이 별로 없다.

 지난 연말, 덕혜옹주 영화가 관객 수 기준으로 7백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 영화의 원작자가 울산에 사는 권비영 소설가다. 그가 쓴 덕혜옹주는 영화를 만들기 이전 1백만 권 넘게 팔린 밀리언셀러다. 그는 덕혜옹주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몽화'에 이어 최근 '달의 행로'라는 중 단편소설 묶음을 냈다. 그는 울산 남창에 살고 있다.
 울산사람들 중에 독서 좀 한다고 하면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소설가 권비영이 어디 사는지는 거의 모른다. 그래서 권비영은 울산 톨게이트를 넘어서면 전국 스타, 울산톨게이트 안에서는 무명(無名)이라는 말이 나도는 것이다. 그는 최근 염포예술창작소에 둥지를 틀었다.

 타 시(市)의 경우를 보면 부럽다. 통영시는 8년 전 쯤에 소설 '소리 꽃'을 쓴 소설가 유익서를 모셔왔다. 한산도 보건진료소를 개조해서 그를 위한 거주지를 만들었다. 또 소설가 이제하를 동피랑 언덕 꼭대기 빈집을 수리해서 모셔다 놨다. 그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라는 작품으로 이상 문학상을 받은 유명작가다.

 각설하고 울산이 예술과 문화, 산업이 공존하는 품격 높은 문화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술인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당장은 결과를 낼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이 예술의 향기를 맡게 되고, 그래서 찾아오게 되는 예술창작촌 등의 건립이 시급하다. 울산에서도 예술인들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면 전국에서 울산문학기행 아니 울산예술기행을 와야 하는 첫 번째 도시로 부각될 수 있다.
 올해는 울산방문의 해다. 400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울산은 다양한 예술행사를 펼칠 준비에 분주하다. 그러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일시적 행사보다 꾸준하게 추진되는 연차적 예술문화사업이 필요하다. 잠재된 예술문화의 보고(寶庫)라고 해야 하는 울산인데도 이를 가꾸려는 노력들이 부실함은 매우 안타깝다. 해마다 발표되는 울산시의 중요사업정책에 예술인마을 건립 등을 비롯해 예술인들이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는 정책이 올해는 꼭 수립, 추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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