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을 조리 있게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말끝에 굳이 '왜냐면'을 습관처럼 덧붙여 이유를 설명하곤 하는데 실은 내뱉은 말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일 때가 많다. 게다가 그 속을 잘 들여다보면 핑계의 목적도 숨어있다.
하지만 안녕달 작가가 말하는 '왜냐면'은 경우가 다르다. 그녀의 작품에서 '왜냐면'은 무한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통로다. 수박 수영장, 할머니의 여름휴가로 잘 알려진 안녕달의 신작 '왜냐면'. 그녀의 세 번째 작품을 고대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바닷가유치원의 하원시간, 선생님이 엄마에게 무언가를 건넨다. '어머'하고 수줍어하는 엄마와 달리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강아지와 장난을 치고 있다. '왜냐면' 이라는 제목과 달리 엄마가 건네받은 게 '무얼까'하는 궁금증으로 첫 장을 여는데 책의 마지막에서 이 종이봉투의 정체가 밝혀진다.
유치원을 나서는데 하늘에서 비가 온다. 아이는 묻는다. "엄마, 비는 왜 와요?"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까 잠깐의 고민도 없이 재치 만점의 엄마는 다음 궁금증 거리를 유발하는 답을 제시한다. "하늘에서 새들이 울어서 그래" 아이는 엄마의 말에 자꾸자꾸 더 묻고 엄마는 아이가 자꾸자꾸 물을 수 있도록 궁금증을 북돋는다. "새는 왜 우는데요?" "물고기가 새보고 더럽다고 놀려서야" "왜 물고기가 새보고 더럽다고 해요?" "물고기는 물속에서 계속 씻는데 새는 안 씻어서야" "왜 물고기는 계속 씻어요?" "안 씻으면 등이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어서 그래" "등이 가려우면 긁으면 되지 왜 계속 씻어요?" "물고기한테는 효자손이 없어서야" "왜 물고기는 효자손이 없어요?" "물고기가 먹던 걸 자꾸 뱉어서 효자손이 도망갔거든" "왜 물고기는 먹던 걸 자꾸 뱉는데요?" "물고기 밥이 너무 매워서 그래" "물고기 밥이 왜 매워요?" "물고기 밥 농장 옆에 고추밭이 새로 생겼거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답변 끝에 잠깐 망설이던 아이는 말한다. "음…엄마, 내 바지도 고추밭 옆에서 자랐나봐요" 이번에는 엄마가 묻는다. "어…왜?" "오는 유치원에서 바지가 맵다고 울었어요. 바지한테 물 줘야겠어요" 첫 장에서 엄마가 선생님께 건네받았던 종이 가방의 정체는 '고참, 맹랑한 녀석일세!' 하는 말과 함께 이렇게 밝혀진다.
그림책의 내용을 모두 밝혔다고 맥 빠질 필요가 전혀 없다. 그림책을 직접 펼치게 되면 "거참, 기발한 작가일세!"하는 탄복이 절로 나온다. 아이의 상상력에 부응하는 재밌는 그림들이 장면마다 펼쳐지기 때문이다.
궁금한 게 많은 아이들은 참 잘 묻는다. 아이들은 어른이 보기에 아주 별거 아니구나 싶은 이야기를 묻기도 하지만 어른으로서 전혀 생각해 보지 않던 이야기를 묻기도 한다. 그리하여 때로는 어른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를 묻기도 한다. 필자 역시 아이들의 엉뚱한 질문으로 머뭇거리거나 진땀을 뺀 적이 있다. 호기심 천국의 아이들에게 세상이 정해놓은 잣대로 그저 옳고 바른 정답만 알려주려 했기 때문이다. 창의력을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우리는 어쩌면 정해진 지식만을 강요해왔는지 모른다. 상상력으로 살찌운 엉뚱한 대화는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해준다. 그리고 그 무엇이든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선물해준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습관을 바꿔 보려한다. '왜냐면'의 까닭에 나만의 이유를 덧붙여 보려한다. 누군가에겐 상상의 날개가, 또 누군가에겐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줄 것이다.
이서림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