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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1
- 동백이 지고

한영채
 
동백꽃이 핀다
증조부 성묘를 다녀오던 오빠의
외마디는 동백처럼 붉고
그 소리 나무에 맺히고
가로수 아름드리 굵은 허리가 휜다
강한 정월 바람이
죽비 내리 듯 서둘러 간다
지나가던 사람은 멀뚱거리고
폭스바겐도 앞머리 상처를 입는다
아버지는 눈을 감고 아들을 입속으로 부르고
옆에 탄 아들은 허공으로
아버지, 외치며
차가운 바닥으로
동백꽃이 툭 떨어진다
순간으로 피는 꽃, 바닥이 흥건하다
도로 위 찢겨진 꽃잎들
태풍 같은 기별이 줄을 당기며 뛴다
시골 오빠가 차가운 바닥에 누워
붉은 줄을 놓으려 하다니
아침상을 물리던 혈족들
맨발로 끈을 팽팽히 당기며 온다
동백나무 허리를 흔든다
붉은 꽃잎이 툭툭 떨어진다
정원 칼바람이 지나 간다
논에서 자고 논에서 일어난다는 일 부자
어설픈 미소를 가진 압실 댁
순한 장남
푸른 옷 한 벌 입은 마지막
장자에게 친, 일가는 한 줄로 선다
사월 논물처럼 눈동자마다 물이 출렁거린다
초사흘, 하늘에서 종이 울린다
아득하게 동백이 진다

●한영채- 경북 경주 출생. 2006년 '문학예술' 등단, 2015년 울산문학 올해의 작품상,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울산시 문예창작지원' 수혜, 2012년 시집 '모란시편', 울산문인협회 회원, 국제펜본부울산지역 회원. '시작나무'동인으로 활동 중.

▲ 최종두 시인
사람에게 저마다 개성이 있고 그 사람 특유의 특징이 있듯이 문학에도 개성이 담기기 마련이다. 이를 우리말로 문체라 하지만 서양에서는 스타일이라 부른다. 문학은 예술의 한 장르이기 때문에 개성이 중요시되고 독창성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이다.
 한영채 시인이 2016년 7월에 펴낸 시집 '신화마을' 가운데서 위의 시가 돋보이는 것은 시인의 개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 시제 '끈'부터가 벌써 독창적이다. 일상의 언어라 하더라도 대개의 시인들이 묻어버리기만 하는 끈이라는 말을 아버지와 오빠, 어쩌면 끈이라 할 수 있는 혈육의 끈으로 비유한 감성이 놀랍다.
 나는 스승인 목원 시인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불리는 조지훈 선생을 이 순간 떠올리게 된다. 매천 황현, 만해 한용운과 같이 한국의 현대 정신사에 빠질 수 없는 지훈 선생이 그의 저서 '시의 원리'에 강조하며 적어놓은 말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만일 꼭 같은 사상, 꼭 같은 형식으로 시를 쓴다면 시인은 한사람이면 족할 것이다"
 그렇다. 한영채 시인과 문학인들 그리고 문학 지망생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바로 그런 정신이 인류문화 수 천 년의 에스프리를 시가 절멸되지 않고 이어오게 한 것이 아닐까? 최종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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