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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나고 싶은 주인공은 내 오랜 친구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최영미 작가의 『흉터와 무늬』(2005)를 10년이 지나 다시 읽어 보았다. 또 느낌이 달랐다. 이번에 더 진한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 와서 며칠을 이 친구 생각을 하며 보냈다.

 최 작가는 1994년에 발표한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일약 스타 시인으로 유명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당시에 나는 일본 유학중이어서 그렇게 회자되었던 그 시를 모르고 지냈다. 귀국해서 시집을 사서 읽은 이후 지금까지 그녀의 작품을 수집해서 읽을 정도로 어느새 나는 그녀의 팬이 되어 있었다.

 최 작가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아마 2학년 때 같은 반이었을 것이다. 최 작가가 당시 인기 있었던 <장학퀴즈>라는 TV프로그램에 학교 대표로 출전해서 반 친구들이 응원하러 간 기억도 생생하다. 총명하고 학습능력이 뛰어난 존재감 있는 학생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유난히 또렷이 기억나는 친구 중의 하나다. 이목구비 반듯하고, 씩씩함이 매력적인 친구였다.

 『흉터와 무늬』가 출간했을 즈음에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출판사를 통해 어렵게 통화를 한 번 한 적이 있다. 우리대학에서 열리는 <시낭송회>에 초청하려고 했는데, 최 작가가 그때 건강이 안 좋아 일이 성사되지는 못했다.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 일이다.

 『흉터와 무늬』는 최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다. 시인인 그녀가 20대부터 간직해 온 소설가에 대한 꿈을 이룬 것이다. 역시 그녀는 문필가이다. 그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녀의 방대한 지식의 양, 거침없이 쏟아내는 날카로운 젊은 감각, 그리고 올곧은 성품이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그녀의 감성 테두리에 갇히고 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뭘 했지'하는 자문만이 내 주위를 맴돌게 한다.

 최 작가는 작가후기에 픽션이라고 했지만, 읽는 내내 작가의 자사전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나는'이라고 하는 1인칭 시점이어서 소설 속 주인공 화자와 작가가 동일시되어 그녀의 삶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작품 속의 '나'라는 화자는 1960년대 서울의 변두리에 태어나 방송작가가 된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늘 아버지의 자랑거리가 됐다. 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실수로 부하를 죽음으로 몰아넣어 평생 죄인처럼 지내야 했고, 1965년에 반정부 쿠데타에 참가해 구속되기도 하고, 불안정한 직업과 일정한 수업이 없어서 1년에 서너 번은 이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됐다. 이러한 아버지와 그리고 오랜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언니에 대한 이야기가 아프게 펼쳐진다.

 주인공보다 두 살 위인 언니는 어릴 적부터 희귀병을 앓아 그 치료로 미국에 입양되어 치료도중 사망하고 만다. 이 언니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언니를 보듬고 언니의 흔적을 찾아가는 노력으로 인해 그녀가 받은 상처가, 흉터가 무늬로 변하게 된다.

 "그 상처가 지금은 네 마음에 흉터겠지만, 언젠가는 무늬가 될 거야, 아니, 무늬가 되도록 만들어야 해, 세월이 그렇게 만들거야" 이렇게 작가는 흉터가 무늬가 되도록 사랑하고 싸웠던 것이다.

 작품 구성은 137개의 일기로 되어 있는 듯하다. 여전히 문장 하나하나에 그녀의 치열함이 새겨져 있고, 펜촉으로 자기 자신을 향해 생채기 내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직도 20대의 젊은 고뇌가 담겨져 있어서 더욱더 쓰라렸다.

 "키케로와 플라톤을 베꼈던 밤들, 프로이드와 스탕달에 밑줄을 긋던 날들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표정이 풍부한 눈썹을 만들어준 서책들이 지금 내 앞에 있다면 갈기갈기 찢고 싶다", "로맨스에 대한 나의 기대는 책 밖에서 번번이 좌절됐다", "소설 속에서 나는 한 인간의 삶을 48시간 농축해 살았다"는 등의 글만 접해도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은 왜일까.

 그녀를 언젠가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하면서, 난 그녀의 다음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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