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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위원회 위원들이 반구대암각화를 찾는다. 보존안 마련을 위한 현장 실사다. 반구대암각화 보존에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돌고 있다. 며칠전 울산에서는 반구대암각화와 관련한 의미 있는 학술행사가 있었다. 세계의 저명한 암각화 전문가들이 참가한 이 행사 직후 많은 학자들이 반구대 암각화를 둘러봤다. 이들은 한결같이 반구대암각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지정된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열손가락에 들 정도의 위대한 인류 유산이다.

 포르투갈 코아박물관 안토니오 바따르다 페르난데 연구원은 "반구대암각화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는데 모든 학자들이 공감한다"면서 "머지않아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꼭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장 류익 르렉 (프랑스 아프리카연구소)소장은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반구대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하며, 세계 여러 나라 전문가들과의 정보 교류, 연구가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구대암각화의 보존 문제가 표류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문화재청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정책이 왜곡돼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의 학계가 높이 평가하는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문화유산 등재 작업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2013년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를 같은 대곡천 일대 천전리 각석(刻石) 유적과 더불어 2017년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한다는 발표를 했다. 문화재청은 "반구대 암각화는 이미 2010년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으며 제반 준비 작업을 거쳐 2017년까지 세계유산으로 등재신청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주변경관과 역사환경이라는 점이다. 이 부분 때문에 반구대암각화는 잠정목록 등재 이후 별다른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등재 작업을 추진하면서 첫 단추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반구대암각화의 독보적이고 탁월한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해 '대곡천 암각화군'이라는 포괄적인 문화유적을 세계유산 목록으로 신청했다.

 당시 일부 학계에서 반구대암각화 만으로 등재 신청을 할 경우 등재 가능성이 낮다는 오판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로 추측되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반구대암각화의 실질적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 문화재 당국의 오판이었다. 잠정목록 등재 이후 많은 전문가들은 반구대암각화가 독보적이고 창의적이며 문화사적 가치가 탁월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더구나 천전리 각석과 억지로 연결고리를 찾아 암각화군으로 묶은 것은 전략적 실패라는 말도 나오는 상황이었다. 반구대암각화 만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시도했다면 굳이 주변 경관 등의 조건과 관계없이 보존 노력에 대한 울산시의 지속적인 관심과 시민들의 문화재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어렵지 않았다는 견해도 있다.

 문제는 또 있다. 올해 초 문화재청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신청했던 한양도성을 자진 철회했다. 문화재청이 자진 철회한 한양도성은 1396년 축조된 이후 620년 동안 서울을 지킨 성벽이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지난해 1월 유네스코에 제출한 뒤 지난해 9월 이코모스 전문가팀의 현장 실사를 받았다. 서울시 등은 한양도성이 △성리학과 풍수를 근간으로 축조됐고 △600년 넘게 지속적으로 관리해왔으며 △시기별 축성 기술의 특징이 잘 남아있다는 점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코모스는 "세계유산에 등재된 다른 도시의 성벽과 비교했을 때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서울시는 한양도성 복원에 예산 327억원을 투입하고 관리 전담부서인 한양도성도감을 설치하는 등 '등재 프로젝트'를 가동해왔으나 결국 준비 부족으로 최하위 등급을 기록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문화재청도 한양도성의 유산등재를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해왔다는 점에서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문화재 정책과 뚜렷한 거리감을 보이고 있다.

 문화재청이 한양도성에 대한 관심과 투자만큼 반구대암각화에 전력을 다했다면 반구대암각화는 벌써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 것이라는 문화재 전문가들의 입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가장 독보적이고 가장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데도 울산에 있다는 이유로, 홀대받는 것이 반구대암각화의 현실이다.

 최근 울산시와 문화재청이 함께 추진한 반구대암각화 보존 용역에서 생태제방안이 최적의 방안으로 결론 났다. 하지만 용역 결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은 여전히 반구대암각화 보존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용역안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데다 일부 단체들의 반발 등이 걸림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문화재청의 의지다. 문화재청이 반구대암각화 자체의 보존에 집중하려는 자세를 가진다면 반구대암각화 보존 해법은 쉽게 결론이 날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잘못된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문화유산 등재 정책을 하루 빨리 수정하고 반구대암각화 만을 바라보고 집중하는 보존안을 찾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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