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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들에 나물이 돋기 시작하면 마음이 간장 끓듯 까맣게 졸아 들었다. 한 며칠 동네 아지매들과 엄마는 산나물이나 들나물을 뜯어서는 고개 넘어 부곡온천으로 팔러 가셨다. 나물 팔러 가는 엄마는 어린 나의 걱정거리였다. 그 힘들게 뜯은 나물을 다 못 팔아서 엄마가 상심하면 어쩌나, 다른 사람은 다 팔고 엄마만 못 팔아 집에 못 오시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으로 동네 어귀에서 동동거렸다. 내가 걱정하며 기다리는 만큼 엄마가 돌아오는 시간은 조금씩 더 물러나는지 좀체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어둑한 시간에 돌아오신 엄마는 내 걱정과 달리 친근한 입담으로 맨 먼저 나물을 다 팔고 오히려 아지매들의 나물까지 팔아주셨다는 뿌듯한 소식을 빈 나물보따리와 함께 건네주셨다. 소심한 나는 그래도 그 날만은 운이 없어 나물을 못 팔면 어떡하나 하고 나물 팔러 갈 때마다 마음 조리면서 엄마를 마중했다.
아가가 아장아장 전차 정류장으로 걸어 나와서 낑하고 안전지대에 올라섰다. 아가는 다섯 살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어린 아기 같다. 아가는 혼자서 엄마를 기다리며 전차가 어디쯤 올까 상상해 본다. 이내 전차가 들어오자 "우리 엄마 안 와요?" 하곤 묻지만, 차장은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라고 냉정하게 말하고는 가 버린다. 아기는 엄마가 올 때까지 계속 기다린다. 다음 전차가 오고, 기다리는 동안 날은 어둑어둑해진다. 아기는 코만 새빨개져서 가만히 서 있다. 눈이 내리고 아기는 엄마를 계속 기다린다.

이 짧고 단순한 동화는 엄마를 둔 자식이라면, 자식을 둔 부모라면 대부분 다

▲ 조희양 아동문학가
알고 있지 않나 싶다. '엄마마중'은 한국의 근대 단편문학을 완성했다고 평가되어지는 월북 작가 이태준의 작품에다 김동성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 글쓴이와 화가가 동일인물이 아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그림책을 다 읽고 나면 든다. 원작에서는 끝까지 엄마는 오지 않는다. 엄마를 간절히 기다리는 아기의 간절한 마음을 잘 표현했지만, 간신히 슬픔을 참고 끝까지 읽은 독자들을 한순간에 울음바다로 빠트릴 수가 있다. 그런데 화가의 마음도 이를 염려했는지 원작에는 없는 엄마와 아가가 손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 추운 날 빨갛게 언 얼굴로 종일 엄마를 기다린 아가를 달래고, 함께 엄마를 기다리느라 동동거린 독자들을 달래주는 멋진 끝 장면이다. 가정의 달이고 어버이날에 부모님을 뵙듯 다시 읽고 싶은 그립고 애틋한 그림책 '엄마마중'이다. 아동문학가 조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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