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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 귀신을 본다는 사람이 있다.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집이든 들어서면 집 구석구석에 귀신이 웅크리고 있다고 했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귀신이 있고, 해롭게 하는 귀신도 있다고 했다. 나도 귀신이 보고 싶었다. 어느 날 귀신이 보여도 당황하지 않고 예의바르게 인사할 자신이 있었다. 귀신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 마음의 자세까지 지니고 귀신을 기다렸다. 엉뚱한 면이 있어 그렇기도 하지만 떠도는 말대로 귀신이 있다면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진심으로 귀신의 형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만약 귀신을 만나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내가 살며 궁금한 몇 가지도 꼭 물어볼 작정이었다. 먼저 살다간 인생 선배인데다 드러나지 않는 존재로 살아있는 사람보다 지혜를 더 갖추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신은 저들을 궁금해 하는 내가 부담스러운 지 아직까지도 안 나타난다.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귀신을 만난 사람이 있다. 이영아 글·그림의 '할아버지 집에는 귀신이 산다' 그림책 속 할아버지이다. 50년 넘게 혼자 사는 할아버지한테 어느 날 짠! 하고 귀신이 나타난 것이다. 일본 옷을 입은 할아버지 귀신이다. 먼저 할아버지가 귀신을 만난 장소가 중요하다. 실제 있는 지명이기 때문이다. 바로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이다. '아미동'은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였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고,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이곳 묘지 위에 터전을 마련했다고 한다.
 나타난 귀신은 조선시대 부산 초량 왜관에서 일했던 이의 무덤에서 살았고, 한국전쟁 때의 피난민인 할아버지는 그 무덤 위에 집을 지어 살다가 만난 것이다. 지금도 마을 계단이나 돌담 사이, 심지어 현관문 앞 댓돌까지도 그 당시의 비석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귀신은 할아버지한테 자기의 비석을 찾아달라고 조른다. 세월이 흘러 무덤 속 뼈도 흙이 된지 오래되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잠들지 못하고 애태우는 것이다. 처음엔 몹시 놀란 할아버지와 막무가내 조르는 귀신의 불화가 있었지만 같은 실향민으로서 귀신의 간절한 바람을 이해한 할아버지는 함께 비석을 찾으러 나선다. 이미 오랜 역사가 퇴적된 곳에서 귀신의 비석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우리도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할아버지의 말에 너, 나가 아닌 '우리'로 공감되고 간절한 그리움은 따뜻한 위로가 된다.


▲ 조희양 아동문학가
 이영아 작가는 사랑하는 문학도반으로 글과 그림이 맑고 깊다. 이번에 출간된 '할아버지 집에는 귀신이 산다'에서도 섬세하고 재치있는 삽화에 글맛이 찰지고 따뜻하다. 아이들에게 무거울 수도 있는 '실향의 아픔'이란 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머러스하게 담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귀신'이라는 소재, 아이들처럼 티격태격 거리는 두 존재의 맛깔스런 관계, 그리고 과연 비석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 이렇게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져서 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는 매력적인 그림책이다. 조희양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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