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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 보존의 핵심인 생태제방안이 또 부결됐다. 생태제방안은 지난 5월 18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현장 재검토를 위해 보류됐고, 지난달 28일에는 문화재위원들이 반구대 암각화를 방문해 현장을 검토했다. 지난 21일 문화재청에서 이뤄진 재심의에서 문화재위원회는 "생태제방의 규모가 지나치게 크고 역사 문화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할 가능성이 있으며, 공사 과정에서 암각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부결 이유를 밝혔다. 울산시는 이번 재심의에서 문화재위원들의 우려사안에 대해 하상 문화재 조사, 생태제방 설치에 따른 반구대암각화 영향여부 판단을 위한 미시기후(온도, 습도, 풍향 등) 영향평가, 생태제방의 안정성 등 검토를 위한 수리모형실험 등 사전 실험과 조사 등을 선 이행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조건부 가결'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市, 조건부 가결 요청에도 또 거부
 유네스코 등재 확대 해석·물문제 등
 중구난방 논란 접고 본질적 접근 필요

# 문화재위원회의 안하무인식 태도
이번에 부결된 생태제방 축조안은 암각화에서 30m 떨어진 지점에 길이 357m의 둑을 쌓는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 제방은 폭이 하부 81m, 상부 6m로 설계됐다. 바닥은 시멘트와 같은 충전재를 주입해 다지고, 암각화 반대편은 땅을 파서 새로운 물길을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문화재위원 중 한 명은 "생태제방은 이름 때문에 환경친화적으로 느껴지지만, 실질적으로는 거대한 댐이나 마찬가지"라며 "춘천에 있는 의암댐의 길이가 273m라는 점을 고려하면 얼마나 큰 시설인지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위원회도 심의 이후 가장 먼저 생태제방의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는 점을 부결 이유로 들면서 "역사문화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할 가능성이 있으며, 공사 과정에서 암각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문화재위원회는 문화재뿐만 아니라 문화재를 둘러싼 환경도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암각화 앞에 무언가를 짓는다는 것을 허용하기 쉽지 않다"며 "문화재청과 울산시에만 문제를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합해보면 생태제방안을 부결한 이유는 훼손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문화재청이 생태제방안에 대해 소극적인 이유는 바로 유네스코(UNESCO)의 세계문화유산 지정 조건에 위배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유네스코 지정 조건에 생태제방안이 위배된다는 근거는 없고 오히려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시민사회의 노력과 의지에 더 큰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지금까지 훼손위기의 문화유산이 유네스코 지정 유산으로 등재된 사례를 보면 훼손위기에서 복원하는 과정이나 보존을 위한 인공적 시설 설치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은 사례가 허다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집트 아부심벨 신전이나 독일 힐데스하임 성당 천정벽화, 폴란드 바르샤바 시가지 등 수없이 많은 유산이 이에 속한다.
 이 때문에 문화재청이 생태제방안을 거부한 근거는 '반대를 위한 반대'로 비치기도 한다. 문화재청은  반구대 암각화 뿐만아니라 주변 경관을 포함한 것(대곡천 암각화군)을 원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원형보존이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필수요건이라면서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각석과 그 주변까지 원형보존이 안되면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문화재청이 단독으로 추진해 세계문화유산 예비목록에 등재한 '대곡천 암각화군'에 맞게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지정 기준을 억지 해석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본보의 지난 2010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현지 취재에서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 지정시 △독특한 예술적 혹은 미적인 업적이나 △일정한 시간에 걸쳐 혹은 세계의 한 문화권내에서 관련예술 또는 인간정주 등의 결과로서 일어난 발전사항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것 △중요하고 전통적인 건축양식, 건설방식 또는 인간주거의 특징적인 사례로서 자연에 의해 파괴되기 쉽거나 역행할 수 없는 사회·문화적 혹은 경제적 변혁의 영향으로 상처받기 쉬운 것 등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특히 유네스코 관계자는 "세계문화유산을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한 판단은 유산의 신뢰성, 유산보존관리 능력, 지역사회의 참여도, 모니터링 수행능력이 입증돼야 한다"고 밝혔고, 원형보존에 대해서는 "문화유산의 보존을 위해 과학적인 검증을 거칠 경우 가능하다"고 전했다.
 지난 1965년 사연댐을 건설할 때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됐다면 당시에 얼마든지 댐 위치 변경이나 기타 논의를 통해 반구대 암각화를 물에 잠기지 않도록 조치 할 수 있었다는 개연성을 외면한 사례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 정부, 울산시민 안중에 없나
반구대 암각화 보존문제는 지역 현안에 대한 사전학습이 되지 않은 국회의원, 학계 등의 돌출발언이나 행보로 여론의 뭇매를 맞는 등 갈지자 행보가 이어졌다. 지난해 빗물저수조와 물절약 양변기 논란의 주인공인 민주당 소속 손혜원 의원은 수위조절안 등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문화재위원회에 여러안을 같이 상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현실을 모르는 일부 의원의 탁상공론식 보존해법은 반구대 암각화의 현재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손 의원은 빗물저수조 등 물 절약 방안을 반구대 암각화 보존해법으로 주장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특히 국회 교문위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안으로 '절수 변기'를 설치하자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손 의원은 토목상하수도 전문가인 한무영 서울대 교수를 증인으로 초청해 이같은 요지의 의견을 발표했다. 한 교수는 당시 절수 변기설치와 빗물 저장시설 등을 활용해 물 사용량을 줄여 사연댐 수위를 낮추자고 주장했다.


 그는 "울산 시민의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은 280여ℓ로 세계 주요도시의 150ℓ보다 많다. 물 수요를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기존 13ℓ변기를 4.5ℓ초절수 변기로 바꾸면 1인당 물 사용량을 40ℓ가량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는 상황에서 생태제방안에 대한 정확한 검토나 세계유산 등재 조건에 대한 객관적 검토 없이 여론몰이식 태도로 보존안을 부결한다면 답이 없다.
 울산시민의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은 254ℓ다. 이는 17개 시·도 중 가장 적게쓰는 전남 240ℓ, 경남 244ℓ에 이어 전국 세번째로 물을 아껴쓰는 도시다.(환경부 '2014 상수도통계'·2015) 객관적 사실을 제대로 살피고 유네스코 등재 여부도 면밀히 따져 현실적인 보존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김진영 편집국장 cedar@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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