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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신문이 창간 11주년을 맞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짧다면 짧은 10년 동안에 지역 대표 언론으로의 반열에 놓인 것이 대견스럽고 장한 일인 것 같아 임직원들의 노고에 경의의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언론과의 깊은 인연으로 30년을 넘게 몸담았던 나는 이 아침 무딘 글로 축하를 대신하지만 감회를 감추지 못하면서 지역 언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론에 재갈을 물리지 않고는 아예 통치자체가 불가능했던 나의 현역 시절과 지금은 풍토에서부터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데 새삼 무슨 말을 더하랴. 다만 울산은 한국 언론사에  특기할 만한 고장이었음을 지적하고 싶다.


 이 고장이 낳은 큰 부자이자 선각자였던 김홍조는 한국 최초의 일간지 경남일보를 진주에 세우고 당대의 논객 장지연을 편집국장에 앉히며 사장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수많은 선각자, 선구자 사회지도자들이 언론을 거쳐 가거나 경영자가 되던 시절이다.
 이렇게 울산이 낳은 인물과 울산과 인연을 가진 인물들이 일구어놓은 언론이 근대사의 한국역사에 겨레를 일깨우는 기수로 민족혼을 일깨우고 미래로 향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었다. 일제강점기를 비롯하여 6·25 한국전쟁 이후의 혼란한 사회를 바른길로 끌고 가는 언론으로 국민에겐 희망이요, 등불이었던 것이다. 
 

 희망이 무엇인가? 희망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그것을 성취하려는 바람이다.
 외국 어느 학자의 말을 잊지 못한다. 세계인들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밥을 먹고 살지만 그 중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은 희망을 먹고 산다고 한 것이다.
 이토록 희망은 사람에게 소중한 양식이 된다.
 나는 울산신문에 걸고 싶다.
 열한 살의 나이를 먹은 울산신문은 못난 선배가 시민의 한사람으로 염원하는 이 희망을 들어주어 시민의 희망이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내가 거쳐온 지역 언론이 지역사회의 희망과 등불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오늘날의 지역 언론의 일꾼들은 영리하고 지혜롭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역 언론은 지역민의 사랑으로 자란다. 그 지역의 언론이 튼튼하고 견고해야 지역도 자란다.
 아니 지역의 크고 작은 현안들을 알리는, 그래서 지역 언론은 그 지역의 변호사다.
 지역의 크고 작은 현안들을 알리고 세상과 중앙정부로 알리는 통로가 된다. 그래서 그 지역의 언론의 역할이 중시돼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앞으로 지방분권 시대가 온다면 이는 필수적인 이치가 되고 말 것이라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동네어귀에 느티나무 한그루가 있다고 하자. 그 나무가 융숭한 가지를 뻗고 잎을 달게 되면 그 나무는 동네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안식처가 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지난날 우리는 지역 언론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언론의 힘으로 자질구레한 일에도 트집을 잡고 비리를 저지르는 사이비들 때문이다.
 지금의 지역 언론사가 그런 곳이 있다면 당연히 퇴출되어야 하겠지만 눈을 닦고 보아도 그런 곳이 없다.
 앞서 말한 언론의 사명을 익힐 데로 익힌 이들도 이 고장의 선각자들처럼 우리 사는 울산이 성장하기까지 이루 셀 수 없도록 힘을 보탠 일꾼들이었다.
 언젠가 나는 본란에 울산에 새로운 활력을 넣어 줄 시민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어쩐지 그런 느낌 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앉은뱅이 용쓰듯 지방분권시대를 예고하고 있다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앞서온다.
 울산의 발전을 위해서 울산신문이 그런 일을 맡아 주었으면 하면서  다시 한 번 울산신문이 시민들의 가장 친근한 친구가 되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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