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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창섭 미술평론가
정말 덥다. 짜증이 난다는 말을 입에들 달고 사는 요즘이다. 몸하고 마음은 파도가 휘감는  바다와 서늘한 바람줄기가 일렁이는 산그늘을 원하지만,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갇힌 우리는 그걸 꾹꾹 내리누르는 수밖에 없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유독 수영장을 그린 그림이 많다. 언뜻 보기에 무언가 시원한 느낌도 들지만, 우리가 갈망하고 떠올리게 되는 그런 청량한 시원한 느낌과는 어딘지 조금 다르다. 

 더운 건 높은 온도와 습도가 마주쳐야 한다. 습도가 높으면 햇볕이 없는 그늘로 들어가도 찌는 더위는 그대로다. 하지만 습도가 낮으면 햇빛이 강렬해도 그늘만 찾아 들어가면 견딜만하다. 이게 모두 습도가 햇볕과 만나 조화를 부리는 심술이다. 호크니가 그린 '닉의 수영장에서 나오는 피터'라는 제목을 단 그림이 있다. 강렬한 빛이 항상 내리쬘 것 같은 느낌이 있는 미국 서부(L. A. 아니면 허리우드?)에서 그린 것이다. 영국태생이긴 하지만 젊어서 팝아트(Pop Art)가 한창이던 6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작품제작활동을 했다. 나이가 한참 든 뒤에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테이트 브리튼에서 '호크니' 회고전을 올해 봄에 성대하게 열었다. 몇 년 전에는 '다시 회화다'라는 책으로 회화의 중요성을 깨우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하여튼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이다.

 그가 그린 수용장 그림은 시원함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 서부의 대기와 수영장이 만나서 만드는 상황을 세세히 관찰해서 그린 것이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영리한 작가가 그린 그림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아주, 매우, 정말 칭찬을 더 해도 모자랄 정도로 잘 그리는 작가이다. 소개하는 그림을 자세하게 보면 그가 얼마나 화면을 주도면밀하게 운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수영장 물결을 자유로운 곡선으로 그린 것이다. 푸른 수영장 물하고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리고 화면 한 가운데 벌거벗은 피터가 바닥을 집고 막 나오려는 모습인데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다. 그 시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흰 선이다. 유리창을 구성하고 있는 틀과 절묘하게 위치시켜 피터의 시선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고 있는 건 무엇이지 모른다. 화면 밖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리창도 사선으로 반사면을 효과적으로 묘사하면서 마치 일러스트같은 느낌이 들게 했지만 그 유리 너머에 창문버티칼은 자세하게 보면 손으로 그린 느낌이 들게 했다. 호크니가 얼마나 예리하게 화면을 운영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 닉의 수영장에서 나오는 피터, 캔버스에 아크릴릭, 214×214cm,, 1966, 리버플 워커 아트 갤러리 소장


 수영장 붙은 타일과 집에 그러진 직선들이 화면을 매우 단순하지만 무언가 일어나는 듯 혹은 일어날 듯 느낌이 들게 만들고 있다. 그가 사용하는 색도 매우 단순하고 붓터치도 매우 가볍다. 정작 호크는 게이여서 아름다운 여성이 수영장에 등장하는 일은 거의 없다. 수영장에 등장하는 남자는 거개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수영장의 시원한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뒷전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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