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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은숙 수필가

김영남 시인의 '그 골목은 세상을 모두 둥글게 잠재운다' 는 시를 읽었다. "깎아주고 덤이 있는 골목 / 그 골목은 좌판 사과가 둥글고, / 리어카의 손잡이가 둥글고, / 그리고 그 흥정이 둥그네 / 거기에서 소리를 지르면 / 순이, 철이, 용호네 아줌마들이 / 골목에서 둥글게 모여드네 / 구불구불 세상을 돌아서 골목이 / 하늘로 올라가고, 밤이 되면 / 둥근 동산을 연탄처럼 굴러서 / 달이 떠오르네" 김영남 시인은 도시 변두리의 골목을 노래하고 있다. 그 동네는 골목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었지만, 소리를 지르면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하니 점포가 아닌 노점이나 비정기적 간이시장인 듯하다. 거기에는 깎아주고 덤을 주는 인정이 있고, 그 인정을 시인은 '둥글다'라고 표현하였다. 사과, 리어카의 손잡이, 동산, 연탄, 달의 모양은 둥글다. 그리고 골목도 둥글다.


 둥글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서로 나누는 것이고,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다. 옛 골목은 특별한 계획이 없이 집에 집을 연이으면서 만들어졌으므로 대개 구불구불하고 폭이 좁은 경우가 많다. 골목 안의 삶은 대로변에 비해 대개 누추하고 서로의 삶이 드러나는 편이다. 누구네가 무슨 음식을 해먹었는지, 간밤에 부부싸움을 하진 않았는지, 아이들이 속을 뒤집으며 말썽을 피우진 않는지 그 냄새에서, 소리에서, 표정에서 서로 알 수 있다. 집안을 속속들이 알다보니 자연스레 서로 음식과 대화를 나누고, 소소한 연장이나 도구들이 오가고, 물론 자주 싸움도 일어나는 편이다. 하지만 애경사가 있을 때는 누구보다도 발 벗고 도와주는 것이 골목 안 사람들이다.


 내게 골목은 배움과, 위로와, 소통이라는 세 가지 이미지로 다가온다. 어린 시절, 대부분의 일은 골목에서 이루어졌다. 우선 놀이가 그렇다. 물론 자치기나 진치기처럼 몸을 많이 움직이는 놀이는 공터에서 하였지만 공기놀이나 땅따먹기, 사방치기, 술래잡기처럼 좁은 공간에서도 가능한 놀이는 주로 골목에서 하였다. 골목에 떨어진 감꽃을 주워 목걸이를 만들고 호박꽃 속에 들어간 벌을 꽃잎을 오므려 잡기도 했다. 장마철엔 간혹 골목의 돌담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이웃들이 모여들어 함께 담을 고쳤다. 모든 소식은 전 부치는 냄새처럼 골목에서 골목으로 퍼졌다. 그땐 돌담 사이에 아주 작은 사람이 있어 담을 타고 내려와 먹을 것을 찾고 밤에는 골목에서 술래잡기 같은 것을 한다는 상상을 자주 했었는데, 훗날 메리 노튼의 '마루 밑 버로우즈'란 동화를 보고 비슷한 상상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 적도 있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 골목은 내게 둥근 세상인 셈이었다.


 골목길 하면 졸업을 한 뒤 직장을 다니며 머물던 연희동 이모네 동네의 골목도 떠오른다. 이모네는 비탈진 골목 안쪽에 있었다. 골목 입구엔 포장마차가 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있었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컴컴한 길에 가로등조차 없어 골목집의 창문에서 나오는 불빛에 의지해 걸어야 했다. 눈이라도 올라치면 골목길이 얼어붙어 연탄재를 깨서 뿌리곤 했는데, 신기한 일은 아무리 일찍 집을 나서도 항상 누군가 먼저 연탄재를 뿌려놓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늦게 돌아와도 불 켜진 창문이 있어서 발밑을 밝혀주곤 했다. 늦은 밤 불 켜진 창문은 가슴에 불을 밝혀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 창문의 불빛은 반딧불이처럼 빛나며 고단한 서울살이에 작은 위안이 되어 주었다.


 울산에 처음 자리를 잡았던 복산동의 골목도 기억난다. 우리가 세 들어 살던 집은 비탈을 조금 올라간 골목 끝집이었다. 그때 큰애가 세 살이었는데, 어느 날 큰애 손을 잡고 골목으로 나서자 골목에서 놀던 예닐곱 살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줄래줄래 뒤를 따라왔다. 그 대여섯 명의 아이들은 우리가 복산동을 떠날 때까지 거의 매일 우리 집을 들락거렸다. 처음에는 성가셨지만 익숙해지니 식구처럼 편안해졌고, 아이들이 큰애와 놀아주는 틈을 이용해 집안일을 하거나 시장을 다녀올 수 있어서 좋은 점도 많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부지런히 바깥소식을 물어다 나르는 편이어서 어린 시절처럼 골목 안의 사정을 훤히 알게 되었고, 아이들의 어머니와도 인사를 나누고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낯선 도시 생활이 골목 안 아이들로 인해 한결 다정하고 수월해진 것이다.


 둥근 세상을 보여주던 그 골목들은 빌라나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모두 사라졌다. 아파트는 둥글지 않다. 아파트에는 둥근 호박도 붕붕거리는 호박벌도 없다. 이어지는 시. "그러나 보게나! / 둥글지 못해 한 동네를 이룰 수 없는 것들, / 둥근 것을 깔아뭉개고 뻣뻣하게 서 있는 저 아파트들을" 골목은 아파트 뒤편으로 밀려났다. 도시의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뒤편에 자리 잡으면서 더 환상적인 공간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에선 시주쿠란 소녀가 고양이를 따라 가다 도시 뒤편의 골목에 위치한 골동품 가게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골목과 골동품 가게는 많이 닮아 있다. 낡고, 고즈넉하고, 상상을 자극하며, 무엇보다 그것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남아있는 골목은 이제 벽화 마을로, 전시회나 음악회를 여는 예술 공간으로, 벼룩시장이 열리는 장터로, 맛집이 모여 있는 식당가로 새롭게 옷을 바꿔 입는 중이다. 골목길에도 포석이 깔리고 넓어지고 깨끗해졌다. 하지만 가끔씩 좁고 울퉁불퉁 했던, 물웅덩이가 생기고 연탄재가 깨져 있던 골목길이 그리울 때가 있다. 둥근 골목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시의 마지막 부분. "이곳에선 둥글지 않으면 모두가 낯설어한다네 / 나도 허리를 둥글게 말아 방문을 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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