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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진기 본보 독자위원회 위원장

사람은 환갑이 지나면 진갑부터 다시 시작하여 한 바퀴 도는 육십갑자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돌고 도는 것이 인생사다. 역사는 흐르기만 하지 일정한 궤도를 도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역사와 전통은 계승 발전한다는 이론이 성립된다. 울산도 큰 틀에서 보면 이 논리가 적용된다.

 간절곶에서 떠오른 해는 남산 끝자락에 있는 시청 옥상에 잠시 머물다가 신불산으로 숨어든다. 태양이 지고 밤이 되면 공단을 중심으로 불야성이 연출된다. 불빛이 꺼지지 않은 도시 사람이 잠들이 않는 도시 자동차가 쉬지 않는 도시 밤과 낮의 구분이 없이 항시 움직이는 역동의 도시다. 60년대 시작된 공업화 물결의 중심에 우리 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업 도시로 보면 울산은 연금 혜택을 받는 노인이 됐다. 그러나 광역시 승격 20주년이란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면 청년의 혈기를 뿜어내고 있는 도시다.

 문수보살의 위력이 서려 있는 불교 성지 울산. 남암산과 문수산에서 시작해 남산에 이르기 까지 문수사, 정토사, 정광사, 남산사, 옥룡사, 학성선원 등 크고 작은 절이 부지기수다. 시민의 친숙한 안식처인 문수산을 중심으로 불교 문화가 스며있는 신라의 위성 도시 울산. 어느 지역보다 불교가 시민의 마음속 깊이 뿌리 내려있는 지역이다. 한 발자국만 옮겨 가면 천년고찰 석남사를 비롯한 영남알프스를 따라 촘촘히 들어서있는 대웅전을 볼 수 있다. 불교의 성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자랑이고 보배다.
 그 정기를 받아 주야장천 돌아가는 공단의 기계 소리는 살아있는 우리 고장의 기상이다. 가끔 동맥 경화가 일어나도 그때그때 잘 치료해서 전국에서 최고 부자 도시의 위용을 갖추고 있고 수출 일등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산업수도이며 친환경 도시로 거듭나서 살기 좋은 도시 환경은 대통령이 휴가 오는 도시로 변모했다. 특히 대왕암은 바다와 접해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해상공원으로 해송과 바위가 잘 우려져 사계절 춥거나 덥지 않은 휴양지로 손색이 없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북쪽으로 1,000곒 이상의 12개 산으로 이뤄진 영남 알프스가 자리하고 있고 동남쪽은 바다로 주상절리를 비롯해 삼포개항의 하나인 염포만 등 완만한 해안선을 가지고 있어 큰 선박이 입출항하기에 편하고 좋은 조건을 갖췄다.

 태화강은 백운산에서 발원하여 지나오는 길목마다 갖가지 명소를 만든다. 물 따라 내려와 보면 세계적 유물이며 반구대 암각화를 중심으로 천전리 각석 공룡 발자국. 가장 국제적인 것이 한국적인 울산 12경 중 하나에 속하는 천전리 계곡을 지난다. 아래로 내려오면 스님과 처녀의 전설이 서려 있고 주변이 아름다운 선바위. 전직 대통령이 다녀가고 국립공원으로 지정예정이며 죽림욕장으로 유명한 십리대숲이 장관을 이루어 복 받은 울산 사람들의 휴식처이며 전 국민이 방문하고 싶어 하는 명소로 탄생했다. 시민들의 대숲 한 평 사주기 운동이 엊그제 같은데 힐링의 명소가 되었다.
 문수산, 영취산, 삼호산, 은월봉으로 이어지는 남암정맥의 정기가 육지에 마무리하는 돗질산. 그 위용이 한국 최대 재벌의 별장도 허락하지 않고 오로지 자연 그대로 남기를 바라며 더는 발전을 허락하지 않은 산이다. 그 끝자락에 고래잡이 항구인 장생포가 있다. 지금은 명성만 있을 뿐 고래잡이를 하지 않고 대신 울산고래 박물관을 비롯해 고래 마을을 조성하여 연 백만이 넘는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고래를 찾아가는 유람선은 돌고래 떼를 만나는 확률을 높이고 있고 선상 음악회 시 낭송회 등을 이벤트로 하고 있어 예술인들이 많이 찾는다. 

 태화루는 모두 7번의 중수 기록이 남아 있지만, 마지막으로 1842년 이현서 부사가 태화루를 중수했다고 한다. 서거정의 울산 태화루 시에서 '울산고을 서쪽의 태화루 황용연 푸른 물에 비친 그 모습 희고 아름다워라 루에 올라 처음에 학의 등을 탄 듯 또 자라머리에 오른 듯 기이한 체험을 하는구나'표현했다. 김극기 시인은 '감돌아 십리대밭 동해로 흘러들고 용 전설 꿈틀대는 태화강 언덕 위에 위풍도 당당하구나 우뚝 선 태화루'. 울산의 대표 시인 송당 박종해 시인은 태화루가 새로 지어지기 전에 이런 시를 남겼다. '태화강 용금소 언덕 위에 太和寺가 있었네 중략 그때 누각에 올랐던 인걸과 山河의 風光을 증언하네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와 더불어 영남 삼루라 이름 하였거늘 지금 태화강에 태화루는 간곳없고 태평스럽게 강물만 흘러가네'. 이렇게 많은 시인 묵객들의 마음을 머물게 한 풍류와 문학의 현장 바로 태화루다. 
 용금소의 옛 이름은 용연이다. 자장 법사가 중국 태화지 용의 복을 빌고 신라의 번창을 기원한 곳이어서 그렇게 불린 것으로 알려졌다. 상류에서 내려온 물은 용금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물길은 용금소를 한 바퀴 돌아 그 위에는 태화루를 지나 학의 소리가 숨어 있는 학성공원을 휘감아 돌아 동천강을 만나 이수 삼산을 만들고 강의 운명을 다하고 바다로 숨어든다. 삼포 개항지의 하나인 염포만의 울산대교에 이르러 운명을 다한다. 이 다리는 남구 매암동에서 동구 일산동을 잇는 1,800m의 현수교다. 태화강에 놓인 마지막 다리며 야경이 아름다워 하나의 명소를 자리매김했다.

 선사 시대 문화에서 신라 고려. 조선. 일제 근대 현대를 고스란히 간직한 울산 옛 이름 우시산국이다. 아직도 삼산을 중심으로 매일 굉음을 울리는 터파기 공사 공중에는 회전 그네가 돌아가고 덤프차는 뭔가를 실어 나르고 곳곳에 콘크리트 비빔 차가 열심히 들락 그리고 있고 하늘을 향에 치솟는 건물은 쉴 새 없이 올라가고 있어 울산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언제 움직임이 멈출지 모르는 미래형 도시요, 꿈이 살아있고 삶이 풍요로운 도시로 발전을 거듭하는 지역이다. 또한 우리 문인들은 활발한 지역 교류를 통해 못다 가본 곳을 보는 마음과 눈으로 다른 지역과 사람과 글을 공유하며 도시 발전에 걸맞은 문화 발전에 전념하고 있다.
 나날이 발전하는 울산. 그 속에는 문인들의 피나는 노력이 한몫했다. 반세기 역사를 간직한 울산 문인협회가 그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역사 발전이 지역 발전이고 지역 발전의 기반은 문인의 책임이란 생각을 가지며 다른 지역 문인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우리 문인들이 못다 가본 곳을 보는 마음과 눈으로 사람과 글을 공유하며 도시 발전에 걸맞은 문화 발전과 역사와 전통이 계승발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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