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울산에 3·1독립운동 기념탑이 세워진다. 비록 시민의 염원이나 울산시의 총의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만들어 울산시에 기부채납하는 형태를 취한 것이지만 울산 3·1독립운동 기념탑은 의미가 있다. 

   이 탑은 송정역사공원 부지 내에 들어서고 애국지사 명부석, 참배광장 등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울산시는 자문위원회를 만들어 긴며탑의 건립에 내실을 기하고 있다. 울산시에서는 이 사업을 통해 자랑스러운 선열들의 얼과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예술성이 가미된 탑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울산에  3·1독립운동 기념탑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기회에 일제강점기와 그 이전 임란 시절의 의병활동과 도산성전투 등 울산에서 벌어진 수많은 외세 저항운동이나 의병활동, 독립운동 등을 총괄하는 기념관이 없다는 문제를 논의에 중심에 둘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울산은 3·1운동 뿐만이 아니라 신라시대 이후 왜구의 침략에 맞서고 임란시절, 의병활동으로 왜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충절의 고장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인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해 전 민족이 일어난 항일독립운동은 울산에서 그 꽃을 피웠다. 만세운동은 3월 상순 이후 전국의 각 지방으로 번졌고, 울산의 만세운동은 1919년 4월 2일 언양 장터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 언양 4·2만세운동은 천도교 울산교구 교도와 지역유지, 상인 등 2,000여 명이 태극기를 일제히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를 계기로 울산 곳곳으로 만세 운동이 번졌다. 이틀 뒤인 4월 4일 오전 9시 일신학교(현 병영초등학교)에서는 병영지역 청년회원과 주민들이 축구경기 시축을 신호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병영 4·6만세운동'이 이어졌다. 4월 8일 남창 장날에서도 온양 및 인근 고을의 장꾼 등 2,000여 명이 참가하는 '남창 4·8만세운동'이 열렸다.

   무엇보다 울산은 숭고한 민족자결운동의 숨결이 녹아 있는 고장이고 박상진 선생과 최현배 선생 등 우리 민족사에 빛나는 영웅을 배출한 도시다. 단순한 기념탑 하나로 끝낼 일일 아니라 송정역사공원에 울산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관을 제대로 만들어 울산 정신을 알리고 계승하는 장으로 승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그 역사를 이제 논의할 시기가 됐다는 말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