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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를 만나러 이종 동생네에 갔다. 고령에 몸이 불편한 이모는 몇 년 전부터 막내 딸 집에 머물고 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일에 쫓겨 허둥대다 보니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 변명이 빈약해서 늘 미안한 마음이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현관에서부터 장아찌 냄새가 진동한다. 이미 집 곳곳에 배여 있다. 고만고만한 장아찌 통이 대리석 식탁 위에 몇 개 놓여 있다. 웬 것이냐고 물었더니 동생이 웃으며 제자님이 가져왔다고 한다.

 뚜껑이 반쯤 열린 통 속에는 엉게, 두릅, 방풍 등 산천의 잎들이 여러 가지 섞여있다. 맛을 보니 짜지도 않고 새콤달콤한 것이 예사로운 손맛이 아니다. 무거워 직접 들고 오기가 힘들어 퀵으로 수박도 같이 보내왔다고 한다. 짐이 무거워 직접 들고 다니기 버거울 정도로 힘이 부치는 나이 인데도 배우려는 길에 들어 선 것이다. 식탁 위에 잘 익은 큰 수박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어디론가 곧 굴러 갈 것만 같이 위태롭다.

 동생이 말하는 귀여운 제자는 나이 드신 노인들이다. 귀엽다는 말을 하는데도 이질적이지 않는 것은 그분들이 공부할 때나 평소에 동생을 대할 때의 모습에서 나온다. 그야 말로 나이와 상관없이 그분들에게 동생은 대단한 선생이다. 동생은 오래전부터 영어 과외를 해왔다. 주로 고등학생들이었다. 언제부턴가 주변에서 배움에 목말라하는 분들이 영어를 배우려고 모여 들면서 변변한 수업료도 없이 시작한 과외가 몇 팀이 된다. 물론 젊은 층도 있지만 주로 60대에서 70대다 배움에 나이가 없다지만 일반적으로 영어를 배우기에는 체력적으로 고령의 나이다. 알파벳부터 시작했다.

 동생도 처음에는 나이를 생각해서 과연 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분들은 우려했던 것 보다 생각 외로 습득이 빨랐다. 배움의 갈증이 주는 결과였다. 영어를 배우면서 길을 가다가 간판을 보고 읽게 된다면서 모두 선생님 덕이라고 여기며 젊은 선생에게 깍듯하다. 그 마음들이 먹을 것들로 대신한다. 그분들의 진솔한 영어 수업료다. 어떤 날은 머리가 굳어 있는 우리들 가르치기 힘들죠? 하며 살갑다.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당신의 아이들을 학교에 맡겨두고 담임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것 같다.

 집 안에 배여 있는 장아찌 냄새를 맡으며 오래 각인된 내 유년이 떠올랐다. 지나온 시간 속에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점은 강하고 진하게 아직도 내 의식 속에 남아있다. 요즘은 잠잠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기적인 자식 사랑이 엄마들의 치맛바람을 만들었다. 치맛바람 이면에는 대부분 촌지라는 놈도 따라다녔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지금처럼 현금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 촌지는 낯선 단어이고 선생님께 드릴 마땅한 선물도 없었다. 작은 시골 학교라서 한 학년이 한 반만 있었다.

 우리 5학년 담임은 남선생이었다. 학교 가까운 마을에서 혼자 생활하다가 주말이면 집으로 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점심시간이 되면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날도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시간에 집으로 갔다. 점심을 끝내자 암탉이 둥지에서 알을 낳고 나왔다. 마침 어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서 나오려다가 닭장 안에 들어가 날달걀 두 개를 꺼내 들고 뛰었다. 갓 낳은 알에서 암탉의 온기가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 따듯함을 선생님이 그대로 느끼게 하고 싶었다. 다행이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교탁 위에 그냥 올려두면 굴러서 바닥에 떨어질 것 같아서 서랍에 살짝 넣어두고 서랍을 닫았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달걀을 넣어두고 조금 남은 시간을 밖에서 친구들과 놀았다. 오후 수업이 다 끝나갈 무렵 우리는 모두 까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한 곳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한손으로 책을 높이 들고 있었고 책에서는 노란 액체가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교단 위에 서 있는 담임의 큰 키는 그날따라 유난히 더 길어 보였다. 책상 서랍에 누가 달걀을 넣었냐고 묻거나 추궁하지도 않았다. 이미 벌어진 상황은 하나의 연극 무대가 정지된 장면처럼 우리 모두는 나름 결과를 놓고 과정도 유추했다.

 달걀이 서랍에서 굴러 안쪽 깊숙이 들어간 모양이다.  선생님은 무심코 책을 넣었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책은 이미 노랗게 물들었다. 누가 가지고 왔냐고 물어보지 않은 것은 이미 당황해서 붉어진 내 얼굴을 봤을 테다. 한참을 그렇게 책을 들고서 화내기보다 웃고만 있었다. 황당하지만 나무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친구들은 범인이 누구인지 눈동자로 암묵적인 추궁을 했지만 수업을 마치자는 담임의 배려로 나는 말없는 추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학우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자 담임은 뭉그적거리며 쉽게 떠나지 못하는 나를 부르더니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 말 뒤에 먹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달걀을 책이 먹었네 했다. 말을 하지 그랬니? 하며 어깨도 토닥였다. 담임의 그 따뜻한 말이 모든 불안감을 녹였다. 그 후로 나는 학교생활이 더 재미있었다. 그때부터 아마 그 분이 내 첫사랑은 아니었나 생각해 본적이 있다.

 동생에게 영어를 배우는 분 중에는 한글학교에 다니는 분도 있다. 한글을 배우면서도 이름자를 쓰고 행복했는데, 영어를 배우고 간단한 단어를 익히면서 꿈만 같다고 한다. 가끔은 공부방에서 들려오는 그분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선생을 따라서 참새처럼 읽어나가는 높은 톤의 영어 소리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육체적으로 노화되고 사회나 가정에서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무력한 노인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위축되어 꿈도 사라지고 허무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었을 분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제 저분들도 더 열정적으로 살아갈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러니 딸 같은 선생에게 무엇이든 주고 싶지 않을까?.

 장아찌는 오래 묵혀두어야 제 본연의 맛을 우려낸다. 마음처럼 그것들을 그릇 그릇 담으면서 흐뭇했을 그분들의 진솔한 마음이 느껴진다.

 달걀의 온기가 식지 않게 야무지게 쥐고 뛰었던 어린 나를 생각했다. 배움에 목말랐을 어르신들의 아이들 같은 목소리가 공부방에서 들리는 듯했다. 가끔 달걀을 깨다가도 담임이 들고 있던 달걀옷을 입은 책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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