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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에 숨이 턱턱 막히고 온몸에 땀이 흘러 쩍쩍 달라붙는 다음 찾아오는 전신의 흐물거림이 느껴진다. 너무 더우니 입맛도 없어 그냥 한 끼 때우러 들어간 삼계탕이 내 인생 최고의 삼계탕이 될 줄이야…. 처음엔 몰랐다. 그저 약간 늦은 저녁식사를 하게 된 나는 소란스럽지 않은 가게의 빈 테이블에 앉아 뭔가 모를 쾌적함에 기분이 좋아지려 하고 있었다. 한적해서 그런가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스피커에서 적당한 볼륨의 기교 없는 단순한 멜로디의 재즈 음악이 날 기분 좋게 만들어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웃음이 삐져나왔다. 평범한 한 끼가 특별한 한 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너무 더우니 음악이 꾸역꾸역 내 귀에 비집고 들어오는 것 자체가 부대낀단 생각에 온통 사로잡혀 있을 때라 더더욱 웃음이 났다. 해뜨기 직전 잠깐의 선선한 바람과 함께 찾아오는 새소리 말고는 내 귀에 담고 싶은 소리는 없었다. 

 무대에서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앞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 작품이 있다. 미국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1912-1992>의 <4분 33초>라는 곡인데 이곡을 초연한 피아니스트는 연주장에 들어서서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곡을 치기는커녕 가만 앉아서 시계만 바라보다 4분33초 뒤에 인사를 하고 나온다. 아마  관객들은 '이거 실화냐?' 하는 반응 아니었을까. 분명 처음엔 집중해서 기다렸을 것이고 그 기다림의 한계가 찾아왔을 땐 아마도  걱정 반 의심반의 웅성거림과  그 이후에 여러 가지 반응들이 있었을 것이다. 작곡가의 의도는 그대로였다. 우연성의 음악이라고 말하는데 그 4분 33초 동안 그 공간속에서 나오는 모든 일상의 소리가 음악이라는 것을 작곡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작곡가이자 미술가, 작가이기도 했던 그야말로 종합 예술가였기 때문에 시도 할 수 있었던 장르파괴의 예술이었다. 사전적의미로 생활과 예술이 일체가 되어 미리 정해진 것 없이 음악, 미술, 육체적 표현 등의 기법과 방관자인 관객까지도 참여시키는 것을 퍼포먼스 아트, 즉 행위예술이라고 일컫는데 그야말로 딱 들어맞는 작품이지 않나? 어떤 장르의 예술이었던 간에 현대음악에 우연성과 불확실성을 하나의 작곡기법으로 만들어낸 그의 업적은 훌륭하다 할 수 있겠다. 

 한국의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에게도 그는  큰 영향을 끼쳤는데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라는 작품을 만들어 도끼로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는가하면 1년 뒤  존케이지를 만난 자리에서는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연습곡>이란 제목으로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는 퍼포먼스를 했다. 조금은 보수적인 성향의 클래식 음악가들에게는 혹은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 활동들이다. 이미 1960년에 일어난 전위예술 활동들인데도 말이다.

 어찌됐건 침묵을 지키는 그나마 고상한 전위음악은 나도 한번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관객은 없지만 피아노 앞에 앉아 가만히 있어본다. 뭔가를 해야만 할 거 같은 생각에 좀이 쑤셔온다. 짧을 것만 같은데 그리 짧지 않은 시간에 놀랐다. 나도 모르게 마음을 비우고 만물과 우주의 소리까지도 들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의 수련을 하게 되는 강제적인 4분30초가 되어버렸다.

 결국 소리 과부하에 걸려 괴로워하던 나는 째지한 삼계탕 집에서 한번 그리고 존케이지 음악과의 수련으로 또 한 번 그렇게 많이 치유되었다. 그리고 글을 마무리하는 오늘은 더위를 날려버리는 기분 좋은 비가 마구마구 쏟아져 빗소리를 온종일 듣고 있자니 귓속이 상쾌해 지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렇게 순식간에 더위가 사라지려나…. 갑자기 가을이 되어 버릴 것 같은 오늘 '사라본(Sarah Vaughan)'이 부른 조지거쉰의 'I Got Rhythm(리듬을 타고)' 이 노래와 함께 째지(Jazzy)한 저녁을 만들어 보시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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