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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하고 웅자하다. 땅에서 밀어올린 몸통은 짧지만 굵다. 소나무는 곡선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곰솔은 직선적 성격이라 했던가. 하지만 이 곰솔은 제 기질 대로 뻗대지 않고 슬기롭게 공간을 장악했다. 튼실하게 뻗어낸 가지들을 멋들어지게 휘어서 하늘로 올리고 굽은 듯 나아가게 했다. 여한 없이 뽑아 올린 가지를 허공에 내놓으며 생각하고 사유한 흔적 역력하다. 그리고 온 몸으로 시간을 기억하고 세월을 품고 있는 것이다.

 궁거랑가 골목 안에 있는 곰솔이다. 벚나무 꽃잎 휘날리는 봄날 궁거랑에 산책 나왔다 우연히 만난 오래된 나무다. 나무한테 이토록 마음이 기우는 건 도심의 주택가 골목에 요지부동으로 끼인 듯 서 있기 때문이리라. 마을의 수호신으로 대접받으면서도 우람한 몸집을 스스로 민망해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건물과 주택에 둘러싸여 협소하게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이 몰려 사는 동네의 비싼 주택지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어 면구스럽다는 모습이다. 그래서 짜안한 첫 대면을 한 것이다.

 할머니의 나무가 앞산에 있었다. 시골집 마당에서 바투 건너다보이는 앞산에는 유독 수려한 소나무 두 그루가 나란하게 우뚝해 있었다. 여든 넘은 할머니 병환의 진단 결과가 노환으로 나왔을 때 외동인 아버지는 고모, 고모부들과 조용히 의논했다. 관을 준비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고 넷째 고모부가 임무를 맡았다. 고모부는 인근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던 대목, 목수였다.

 장모님의 관을 재량하게 된 고모부는 그 빼어난 소나무 중 한 그루를 베어 내리는 일부터 엄숙하게 행하였다. 흰 무명바지와 저고리를 정갈하게 입은 고모부의 지휘 아래 그와 똑같이 깨끗하게 흰 옷 입고 흰 수건을 머리에 동여맨 인부들이 나무를 베어 눕혀 집으로 옮기는 일에만 온 종일 걸리던 광경이 잊히지 않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걸음에 몸을 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키워온 나무라는 걸 그때 알았다.

 두 나무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평생을 함께 했다. 아름드리 푸르고 청청하게 서서 두 분의 평생을 낱낱이 내려다보고 있다가 그 먼 길 떠날 때도 묵묵히 따라갔다. 두 분이 그토록 부지런하게 사셨던 건 내생까지 같이 할 나무를 지척에 두고 생을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지 싶다. 곁에 두고 쳐다보며 떠나야 할 순간을 매일 상기하는 삶을 잠시라도 허투루 지낼 수 있었을까. 사람과 나무는 끝까지 서로 팔짱을 얽어 끼고 좇아가는 간곡한 사이임을 그렇게 보았다. 멀고 먼 저승길 나서며 베옷 한 벌 입은 할머니가 가져가는 건 오직 베어낸 나무 한 그루였다.

 할머니 생전에 삶을 더불어 했던 나무들이 있었다. 시골집 뒷마당에 면하여 펼쳐진 밭엔 밭둑을 빙 둘러 60그루 넘는 감나무 사이사이에 뽕나무가 끼어 있었다. 그 끝에는 숲 짙은 대밭이 수런대었다. 집을 지을 때 밭의 경계삼아 심은 나무들이었다. 철따라 대밭의 대를 쪄내어 소쿠리와 광주리를 엮어 일상에 사용했다. 감 계절엔 주홍빛 감이 감나무에 주렁주렁 늘어져서 할머니를 환하게 반겼다. 할머니가 고추장에 넣어 둔 감장아찌는 비할 데 없는 맛이었다. 뽕나무에 연한 뽕잎이 벋어나면 할머니는 누에를 치고 명주를 짜서 식구들한테 명주옷을 해 입혔다. 나무한테 생활을 기댄 것이다.

 대문을 나서면 집 앞을 지나가는 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 길 따라 맑은 시냇물이 흘렀다. 대문 바로 앞에 시냇가에 뿌리를 내린 키 큰 구기자나무가 무성하게 잎을 돋우어 철마다 붉은 열매가 다닥다닥 매달렸다. 할머니는 좋은 약나무라며 언제나 자랑스러워했다. 그토록 유명한 나무가 집 앞을 지켜주는 것을 무척 흡족해 하면서도 그 좋다는 약을 한 알도 따지 않았다. 본래 그 자리에 있던 것이기에 당신 것이 아니라고 여겨 열매에는 손도 대지 않고 아끼며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고 보면 할머니는 저절로 산에 나 있는 산나물도 캐지 않았으며 다디단 산머루가 산을 뒤덮은 듯 열려 있어도 따는 걸 본 적이 없다. 그저 쳐다보며 많이 영글었다고 기꺼워하기만 했다. 산과 들의 나무는 홍수를 막아 마을을 보호해 준다며 좋아했다. 할머니한테는 귀하게 치어다보기만 하며 애지중지하는 나무가 있었고 혜택 받는 나무한테 고마워했으며 한세상 하직하고 떠나면서 데리고 가는 나무가 있었다.

 신라의 문장가 고운 최치원 선생이 그 옛날 홍수를 막기 위해 함양에 수림을 조성한 것이 지금의 상림공원이다. 조선의 정조 임금은 너무도 많은 나무를 심어 효행을 하고 백성의 삶을 살폈다. 조선중엽에 심 씨가 들판 가운데 밭둑에 나무 한 그루 심은 것이 이 곰솔이다. 곰솔은 제 할 일을 잘 안다는 듯 거목으로 자라 마을의 당산나무가 되었다. 세월이 흐르며 시대가 변하여 곰솔나무는 이제 논과 밭이 질펀하게 펼쳐졌던 드넓은 들판의 제 선 자리를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내어주고 비좁게 서 있다.

 사람들 마을에 섞여 살아서일까. 노거수 곰솔은 팍팍한 한세상 살아가는 인간의 애환에 귀를 기울이는 형상이다. 장대한 몸집으로도 훤히 트인 하늘보다 사람이 살아가는 땅 쪽으로 몸을 낮추고 있다. 저 세상으로 떠나는 할머니와 같이하는 나무를 보아서인가. 일조량 따라 살아내느라 삐딱해진 이 껍질 거친 곰솔에 마음이 간다. 부대끼는 삶에도 무너지지 않겠다고 앙다물고 여며둔 마음이 저 혼자 울적해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 고요히 서 있는 이 나무가 생각나곤 한다. 타박타박 살아온 한세월을 풀어내면 곰솔이 굽은 가지 내밀며 다 들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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