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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운하 울주군 세무1과 세정담당

우리는 깨어있는 일상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낸다. 그러다 보니 직무 스트레스를 피할 수는 없다.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어느 것이 꼭 더 좋다고 말할순 없다. 물론, 누구나 휴일이면 직무 스트레스를 잊고 해소하려 애를 쓴다. 분명한 것은 직장 생활이 만족스러워야 삶도 만족스러울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직무 스트레스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예전에 모 방송사에서 방영한 '스트레스 어벤저스!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들의 비밀'이란 프로그램을 인상깊게 봤다. 기억에 남는 것은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은 그것을 피하지 않는다.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반은 줄어든다는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돈다. 그말이 맞다면 잊으려 발버둥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평소 머릿속 상념들을 좀 정리하고 싶다. '스트레스'와 '힐링'의 관계다. 우린 모두 스트레스 없는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그게 없어지기나 할까? 스트레스를 힐링하면 행복해지는가? 진정한 힐링의 방법은 무엇인가. 어찌됐든 스트레스는 행성처럼 늘 우리 옆을 맴돌고 있다. 그래서 행복은 쫓아가면 갈수록 잡히지 않는 달님처럼 한발 앞서서 달아나 버릴 것 같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다. 대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스트레스는 "힐링" 대상이기만 한 것일까? 관점을 바꾸어 보자! 바로 이것이 오늘의 주제다.

 스트레스는 잠재의식이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직무 스트레스는 잠재의식 깊숙이 숨어 있는 문제 해결력이 두꺼운 표피를 뚫고 나오는 아픔이다. 그것은 아픔이면서도 반가운 것이다. 마치 자신도 못 느끼는 괴력을 발휘하여 화염에 휩싸인 건물의 기둥을 헤치고 가족을 구하는 가장의 모습과도 같다.
 스트레스는 인류가 지구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전하고 적응하려는 또 다른 표현이다. 인간에게는 이 위대한 적응력이 있어서 오늘날 이렇게 진화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인간이 스트레스를 못느끼는 존재였다면 진작에 멸종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스트레스는 살아남기 위한 위대한 적응의 산물인 것이다.
 누구나 잠재 의식속에는 강력한 문제해결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즉 비상 상황이 되어야만 작동한다. 현대 문명을 사는 우리는 최대한 안락한 삶을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 본능적으로 스트레스라는 비상 상황은 회피하고자 한다. 조그마한 불편, 아픔에도 필요 이상의 고통을 호소한다. 온 세상이 스트레스를 적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그것은 "힐링"이 필요한 질병이 되었다.

 필자는 쉴 때에도 굳이 잊고 해소하려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지긋이 응시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문제해결 과정이니까.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메모도 하면서 그저 받아들인다. 중사신통(重思神通)이라 했다. 생각을 거듭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 잊을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은 어떤 무대에 섰을 때 긴장하지 않으려 할수록 오히려 더 증상이 심해지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것은 더욱 잘되게 하려는 자연반응이자 정교한 적응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인류는 그렇게 진화되어 온 것이다. 그러니 스트레스는 반갑다고 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배제해야할 악은 아니다. 이제는 '힐링'의 대상도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건강을 지켜주는 백신과도 같으니까. 백신 주사를 맞으면 조금은 아프지만, 면역 기능은 보장받는다. 스트레스는 그런 놈이다. 고마운 존재가 아니겠는가.
 일본의 유명한 기업경영자인 이나모리 가즈오는 그의 저서 『왜 일하는가』에서 시련은 하늘이 준 선물이라 했다. 그렇다면, 직무 스트레스는 직장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무리일까. 우리 모두 스트레스를 잘 극복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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