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젊은 주위의 사람들과 남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들 중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랑의 통계학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남녀가 만나고 결혼하는 것에서 사랑의 중요성이 적어진 것이 아닌가싶다.

 그렇지만  '사랑이 깊은' 남녀가 아니라도 어느 기간 만나고 나면 서로 결혼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기가 있을 것이다. 그 선택의 시간은 지나고 나보면 자신의 인생에서 더 없이 중요한 시간이고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것일 텐데 막상 닥친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의미 같은 것이 눈에 띄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조리 작가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보면 이런 사랑, 결혼 그리고 선택에 대한 태도가 잘 그려져 있는 것 같다. 소설의 주인공 뫼르소는 자기 상사와의 대화에서 파리에 가서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모든 생활은 다 그게 그거라고 하면서 기회를 그냥 떠나보낸다.

 뫼르소는 애인인 마리가 그날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도  그건 아무래도 좋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결혼해도 좋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녀는 뫼로소가 그녀를 사랑하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주인공은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기는 하나 아마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녀는 뫼르소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하지만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가 누구를 좋아하게 될 때 좋아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라고 분명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도 소설 그 다음 대목에서 마리가 말했듯이 뫼로소가 이상한 사람이며 그런 것 때문에 그를 사랑하고 있지만 언젠가 그와 똑같은 이유로 해서 그가 싫어질지 모른다고 말했듯이 좋아했던 점이 싫어하는 점이되기도 한다.

 사랑이 변한다고해서 자신이 했던 것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랑한다고 생각할 때 사랑한다고 말하며 그렇지 않은 때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사랑의 모습이 아닌가. 사랑한다고 사탕발림할 수도 있었는데 뫼르소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그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충분히 '이방인'일 것이다. 그는 정직함에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은 했어도 사실은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런 뫼르소의 태도와 행동에서 우리가 사는 삶이나 결혼의 조건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봤다.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그것의 감정에서 가장 우선되어야하는 것은 자기 자신 그 감정에 대한 솔직함이 아닐까. 왜냐면 그 기분은 우리를 그곳에 데려가 그 앞에 서게 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이 발견되게 되는 곳으로서 자신이 드러나는 장소에서 가짜 사랑 놀음을 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란 필자가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지만 상대방과 같이 있음이 이제껏 달성 못한 세계와의 관계 가능성을 드러나게 할 때 나타나는 것으로서 바로 자신이 드러나는 그곳이 아닌가. 주위 사람 시선 같은 것을 맞춘다고 자신을 잃으면 무슨 소용인가. 남에게 가짜로 맞추는 것은 자신을 배신하는 것이 될 수 있으며 결국 상대도 배신하게 될 수 있다.
 사랑하여 함께하는 그 공간이라는 것이 그렇다. 정말 사랑한다면 오히려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는 공간에서 아마도 사랑과 실존 가능성이 실현되는 시간을 갖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M. Boss가 말했던 것처럼 신체의 존재는 취리히에 있어도 그의 사유의 존재로서는 파리 노틀담에서 실존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자신의 마음을 여는 실존 없이는 개개의 사물들과 인간들이 나타나서 실제로 그들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랑과 삶의 장소인 거기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가짜 사랑으로 그리고 자신을 속이는 것으로는 결코 우리의 마음을 열 수 없을 것이고, 그런 열림이 없이는 사랑을 무엇이라고 부르든 실제 사랑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현대는 카뮈가 살았던 때보다 더 마음을 여는 일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혹 '조건'을 사랑하거나 그냥 서로의 앞에 놓여있거나 또는 거리가 멀다고 사는 형편이 틀리다고 선택이 어려워지며 마리처럼 결혼할 것이냐 또는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묻는 경우는 점점 적어진다는 것이다.

 뫼르소는 꼭 파리에서 살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또한 사랑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것이 결혼을 못하게 할 이유가 되지도 못했다. 사랑이란 단지 그 감정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고 자신을 자기 자신에게 데려오는 것으로서 사랑의 진실이란 오히려 솔직한 감정인 것인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이 열리는 장소는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는 곳으로 그 장소에서 그렇게 벌거벗겨져 자기 자신에게 자신을 보이면서 마주칠 수 있는 관계라면 사실 그곳 삶의 장소에서 그 외의 그 어떤 '사랑의 조건'이 필요할 것인가.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