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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송은숙 시인
2017년 09월 07일 (목) 16:48:14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김애란의 '나는 편의점에 간다'란 소설에는 편의점을 중심으로 소비생활을 영위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많게는 하루에 몇 번, 적게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러므로 그사이, 내겐 반드시 무언가 필요해진다.' 라는 구절이 소설의 처음과 끝에 배치되어 수미상관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소설은 편의점을 두고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자신의 신상을 꼬치꼬치 캐묻는 편의점에 불편함을 느끼고 다른 편의점을 이용하게 되는데, 그곳에선 나름 단골이 된 주인공을 아예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그저 삼다수와 디스를 사는 무수한 손님 가운데 한사람일 뿐이다. 수미상관의 구조는 매장에 가득 쌓인 삼다수병처럼 몰 개성한 생활이 계속 이어지리라는 암시이다.


 소설 속의 묘사처럼 편의점은 동네에 가장 깊숙이 침투해 있는 가게이다. 대형마트에 밀려 슈퍼마켓과 구멍가게가 사라진 틈새를 비집고 언제부터인가 편의점이 등장하였다. 깨끗하고 밝은 매장, 구색을 갖춘 상품들, 무엇보다 24시간 문을 여니 말 그대로 고객의 편의를 위해 봉사하는 가게 같다. 그리고 바야흐로 편의점 전성시대다.


 우리 동네에도 편의점이 두 군데 있다. 좀 큰길가에 하나, 약간 좁은 길 안쪽에 하나. 큰길가의 편의점 자리는 기름집, 양품점, 작은 슈퍼, 선식 가게 등을 거쳤다. 선식 가게가 편의점으로 바뀌었을 땐 이상하게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장사가 안 되는 가게 앞을 지나는 일은 고역이다. 안면이 있어서 인사는 하지만 딱히 필요한 게 없기 때문에 주인의 간절한 눈빛을 뒤로 하고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짧은 순간이지만 마음이 편치 않고, 심지어 저래서 밥은 먹고 지내나하는 괜한 걱정까지 하게 된다. 그런데 편의점으로 바뀌니 주인 대신 아르바이트생이 있어서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주인이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부담이 덜해진 것이다. 아르바이트생은 자주 바뀌는 편이라, 장사가 안 되어 잘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주 바뀐다는 것은 스스로 그만둔다는 것일 테니까. 물론, 나는 그 편의점에 가진 않는다. 한두 푼이라도 깎으려고 아등바등 흥정을 하는 대한민국 아줌마는 정가를 다 받는 편의점과 친하지 않은 편이다.


 가끔 깊은 밤에 편의점 앞을 지나칠 때가 있다. 캄캄한 밤에 홀로 밝은 편의점은 바다 가운데 떠있는 외로운 섬 같다. 창백한 형광등 불빛 아래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의 모습은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이 연상된다. 특히 '밤을 새는 사람들'이란 그림은 밤의 편의점 분위기와 아주 흡사하다. 불빛이 밝은 휴게소 안에 찻잔을 앞에 두고 몇 사람이 앉아 있다. 그들은 함께 앉아 있지만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다. 각자 상념에 잠긴 그들 사이엔 불빛 반대쪽의 그림자처럼 고독이 드리워져 있다. '자동판매기 식당'이란 그림도 있다. 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여인 혼자 남아 자판기에서 빼낸 커피 잔을 들고 있는 모습. 누구를 기다리는지 커피가 다 식을 때까지 여인은 그것을 마시지 못한다. 하얀 테이블이 여인의 마음처럼 황량하다. 호퍼의 그림과 같은 밤의 편의점. 그래서 누군가 헐렁한 반바지에 삼선슬리퍼를 끌고 하품을 하며 편의점으로 들어서면 괜히 반갑다. 고독한 풍경에 순간적이지만 균열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제 편의점은 생필품이나 기호품을 판매하는 마트의 기능을 넘어서 다양한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다. 택배 수하물을 취급하거나, 커피와 로또 복권을 판매하거나, 심지어 현금인출기를 두고 은행 업무까지 맡아 한다. 편의점 매출 1위 물품이 도시락이라 하니 식당의 역할도 하는 셈이다. 편의점은 도시의 허파꽈리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얼마 전엔 식구들끼리 나들이를 가서 점심 겸 통닭을 먹기로 했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통닭집을 찾을 수 없어서 포기 하려는 순간, 편의점 유리문에 붙어있는 통닭 판매 광고지를 보았다. 편의점표 통닭 맛이 어떤지 궁금하여 들어갔더니, 아르바이트생이 어정쩡한 표정으로 광고는 붙였지만 아직 개시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통닭을 튀긴다고 급여가 크게 오르는 것도 아닐 테고, 또 닭을 튀기는 게 얼마나 번거롭고 성가신 일인가 싶었다. 아르바이트생으로선 정말 난처한 일일 것이다. 아무리 경쟁사회라지만 편의점에서 통닭은 좀 심하지 않은가. 퇴직 후 창업 1순위라는 통닭집의 입장에서도 그렇고, 최저 시급을 받으며 몰래몰래 다리를 주무를 알바생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수요가 있으니까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이러다 편의점 품목에 족발과 회까지 가세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데 이제 무인 편의점이 등장했다고 한다. 편의점 출입구에 있는 인식기에 손바닥을 대면 문이 열리고, 음료냉장고도 가까이 가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돌아서면 닫힌다고 한다. 사려는 물건을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면 모니터에 자동으로 금액이 표시되는데, 모니터 옆 핸드페이에 손바닥을 대면 결제까지 된다고도 한다. 나중에 골목 편의점까지 무인화 된다면, 카운터 뒤에 마네킹처럼 서있는 저 아가씨는 어찌될까. 무인 편의점에서도 컵라면과 삼각 김밥을 먹을 수 있을까. 설령 먹을 수 있다 해도, 폴터가이스트가 장난을 치듯 저절로 문이 열리고 닫히고 하는 가운데서 혼자 삼각 김밥의 비닐을 벗긴다면 아무래도 그 쓸쓸함에 목이 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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