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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아는 고사가 있는 성어(故事成語) 하나, 춘추시대 중엽, 진(晉)나라 낙서(樂書)는 진나라에 항거한 정(鄭)나라를 치기 위해 스스로 중군(中軍)의 장군이 되고, 범문자(范文子)는 부장군이 되었다. 진(晉)과 초(楚)의 두 군대가 충돌하자 낙서는 초(楚)와 싸울 것을 주장했다. 이에 반대하여 범문자(范文子)가 말했다. "성인이라면 안으로부터의 근심도, 밖으로부터의 재난도 지니지 않고 견디지만, 우리에게는 밖에서의 재난이 없으면 반드시 안에서 근심이 일어난다. 초(楚)나라와 정(鄭)나라를 잠시 놓아두어 밖에서의 근심을 내버려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때 송나라에 화원이라는 대부가 있었다. 그는 지성을 다해 진(晉), 초(楚)를 설득하여 기원전 579년에 송나라의 서문 밖에서 양국의 대표자가 맹약을 조인케 하였다. 그 맹약의 주된 내용은 서로 침범하지 않을 것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환란이 있을 때엔 서로 도와서 복종하지 않는 나라가 있을 때에는 두 나라가 연합하여 공벌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남북을 대표하는 두 나라가 평화를 유지함으로써 천하의 소란을 가라앉히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맹약이 깨어진 것은 3년이 지나서였다. 초나라가 정나라를 침략함으로써 맹약은 깨어지고 이듬해인 575년에는 진의 영공과 초의 공왕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언릉이라는 곳에서 대치했다. 이 싸움에서 초나라의 공왕은 눈에 화살을 맞고 패주하여 초나라의 기세가 크게 꺾이는 비운을 맞이했다. 안으로는 성과급문제로 정해(丁亥)년 벽두부터 파업을 맞고 밖으로는 환율하락으로 인한 수출채산성이 심각한 현대자동차의 경우가 이와 다름 아닐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우리 국가체제의 양대 축이다. 이 둘은 상호의존적이며 홀로 운영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서로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고 있다. 이 두 개념 중 하나라도 소홀히 한 나라는 세계경제의 무대에서 사라졌거나 사라질 운명에 처해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많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각기 독립적인 주체가 되어 경쟁적으로 행동하는 곳이 시장이라면, 모든 국민이 동등한 투표권을 갖고 주인으로 행동하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다. 민주주의는 각 구성원이 법과 규범을 준수하는 전제 아래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조화롭게 운영될 수 있다. 시장경제도 마찬가지다. 합리적 행동은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다. 개인의 자유와 의사결정이 최상의 가치로 추구되는 체제다. 그런데 개인의 합리적 선택과는 괴리된 현상을 우리는 현실에서 자주 경험하게 된다. '떼 지어 행동(herd behavior)'하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무리를 이뤄 행동하면 한 쪽으로 쏠리는 결과가 초래되기에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경제의 안정이 무너지고 불확실성이 증가하게 된다. 경제주체의 이러한 행동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근래에 자주 관측되는 현상이다. 쉽게 끓고 쉽게 식어 냄비현상이라 불리는 경제의 과열과 급랭의 주요 요인임은 말할 나위 없다.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 거품을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경제보다 정치적 동기에서 유발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 민주적 절차에 따른 개개인의 의견수렴 과정을 의미 없게 만들기도 한다. 선진경제일수록 합리적 개인주의가 확산되고 떼 지어 행동하는 현상이 드물게 나타난다. 왜 그럴까? 첫째, 경제활동이 투명하고 모든 경제주체가 정보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민간 부문, 노조와 사용자,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 간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적다. 둘째, 경제문제의 정치화가 최소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경제제도의 유연성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직적인 제도에서는 개인의 선택폭이 제한적이므로 상대적으로 남과 같이 행동하는 결과가 만연하게 된다.
 제 아무리 옳은 방향이라고 해도 국가나 기업의 정책이 효과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개인이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돼야 한다.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전부인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떼 지어 하는 행동이 국가나 기업의 발전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와 노력이 경주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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