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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국 근대소설인 염상섭의 <만세전>의 주인공을 만나보고자 한자. 내가 『만세전』을 처음 읽은 것은 1990년 일본 유학시절이었다. 한일비교문학을 전공하고 있던 후배가 매주 열리는 세미나에서 <만세전>을 발표를 해서 읽게 되었다. 시간적 공간은 다르지만, 일본 유학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나름 의미 있게 읽은 작품이기도 하다.

 염상섭은 1897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東京)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문학과에서 수학했으며, 1920년에 귀국해서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해 정치부 기자를 역임했다. 1922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만세전>은 1925년 장편소설로 탄생해 사람들에게 읽히게 됐다. 다분히 자서전적인 요소가 강하며, 당시 조선 지식인들의 고뇌와 갈등이 잘 나타나 있다.

 발표 때의 소설 원문을 보면 읽기가 힘들지만, 2004년에 문학사상사에서 간행된 <만세전>은 현대어역으로 되어 있어 읽기가 편하다. <만세전>에는 약 30여 명의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주로 '나'라는 주인공 '이인화'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주인공 이인화는 도쿄 W대학 문과 재학생으로 자조적이며 자기분석에 철저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이인화는 조혼 풍습에 의해 일찍 결혼했으나 이에 반기를 들고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아내가 죽고 난 다음 다시 일본으로 가는 여정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소설은 "조선에서 만세가 일어나기 전 해 겨울이었다"로 시작된다. 그러니까 시간적인 공간은 1918년 겨울인 것이다. 작품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인화가 보고 듣고 관찰하며 자신의 생각을 그린 기행형 구조로 되어 있다.

 작품의 줄거리를 여정에 따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도쿄에서 아내의 위독한 전보를 받고 서울로 가기 위해 준비를 한다. 도쿄에서 기차를 타고 고베를 지나 시모노세키까지 가서 그곳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게 된다. 부산에 도착해서 부산 거리를 둘러보고, 다시 기차를 타고 김천, 대전을 지나 서울역까지 간다. 서울서 머물면서 아내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서울을 떠나 도쿄로 향하는 데서 소설은 막을 내린다.

 이인화는 일본에 있는 동안에는 당시 조선의 일제강점기 하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귀국하기 위해 시모노세키에서 배를 타고 조선으로 건너가는 순간부터 일본사람들이 조선에 대해 비하하는 이야기를 듣고 조선의 실상을 파악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는 핍박받는 조선인들을 접하게 된다.

 작가 염상섭은 주인공 이인화를 통해 당시 일본인의 식민지 수탈행위를 폭로한 것이다. 일본인 협잡꾼들에 의해 조선의 힘없는 농민들은 일본 각 지역의 노동자로 팔려나갔고, 일본 자본이 조선에 침투되면서 자본주의화가 진행되어 농민이 도시의 노동자로 변화하는 현상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조선인들의 생활은 피폐해지고 빈민화가 가속화되어도 일반 조선인들은 그것이 일제강점기에 의한 사실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많은 조선인들은 일본인이 들어오고 나서 새로운 문명을 향유하게 됐고, 전등이 들어오고 전차가 다니게 되어 편리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층 양옥집이 생기고 다다미가 편리하고 위생에 좋다고 말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이층집이고, 누구를 위한 위생이냐고 반문하는 주인공 이인화를 통해 일제강점기 하의 근대화 허구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이인화 이외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 당시 사회를 엿볼 수 있고,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인화는 이러한 조선의 실상을 뒤로 한 채 도망가듯이 서울을 떠나고 만다.

 이인화는 냉소적인 비판만 있을 뿐 책임과 대안을 모색하지 않은 무력한 지식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왠지 내 안에 있는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나를 뒤돌아볼 수 있게 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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