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의 치명적 오류
문화재청의 치명적 오류
  • 김진영
  • 승인 2017.09.1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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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편집이사 겸 국장

며칠전 부산에 사는 한 친구와 카톡으로 대화를 하다 반구대암각화 이야기가 나왔다. 가을 초입에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여행을 갔다는 그 친구는 느닷없이 반구대암각화 사진을 카톡에 올렸다. 그리곤 "대단한 울산, 왜 우리는 이렇게 가까운 곳에 어마어마한 문화유산이 있다는 걸 몰랐을까"라고 글을 올렸다. 사연인즉, 제주에서 반구대암각화를 포함한 국내 암각화를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던 터였다. 제주교육박물관에서 기획한 이 전시는 '선사(先史)의 기적, 한국의 암각화' 사진전으로  그 첫 머리전시가 '울산에서 찾은 선사시대 암각화'였다. 그 현장을 본 친구는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는 반구대암각화의 장소성에 놀랐고, 암각화에 새겨진 엄청난 문화유산의 인문학적 가치에 놀랐다는 이야기를 적어놓았다.

 친구의 글이 오늘 아침 내 속에 내재된 원죄의식을 깨운다. 바로 보존논란의 중심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지역 언론인의 자괴감이다. 1990년대 후반, 반구대 암각화 보존문제가 첫 제기된 이후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는 20년간 우여곡절을 겪었다. 다양한 논의도 있었고 현실적인 시도도 있었지만 모두가 수포로 돌아갔다. 그나마 오랜 시간 돌고 돌아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생태제방안이 제시됐지만 그 마저도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문화재 인사들의 아집에 만신창이가 됐다.

 2009년과 2011년 생태제방안을 연거푸 부결시킨 문화재위원회는 그 대안으로 사연댐 수위조절안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울산권과 대구·경북권의 물문제와 연계돼 있어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 상황이다. 여기에 정치권이 툭하면 반구대암각화 보존문제에 개입해 보존문제를 정치적 입지다지기나 지지층 결속의 이벤트성 이슈로 만드는 우를 저지르고 있다.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개념조차 모호한 문화재위원이나 숨죽어 지내다 기회가 오면 곰팡이 균처럼 마각을 드러내는 정치인들의 이슈 선점화는 이제 지겹다. 그런 따위의 무지와 술책으로 반구대암각화 문제에 접근해서는 안된다.

 지금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반구대암각화 앞으로 흐르는 대곡천과 함께 주변 지형의 변화를 동반하는 문화재 형상변경 문제다. 이 문제는 사실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된 시점부터 돌아가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문제를 위한 문제에 불과하다. 지난 1971년 겨울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됐을 때 이 일대는 이미 울산공업센터의 용수공급을 위한 사연댐 축조가 끝난 상태였다. 7000년의 원형을 간직했던 대곡천이 사연댐의 축조로 지리적 자연적 생태적 변화를 겪고 난 이후였다. 대곡천의 유속이 달라졌고 암각화 주변의 풍광도 변했다. 무엇보다 이미 수년째 반구대암각화는 사연댐 수위와 비례해 자맥질을 반복해오던 시기였다.

 문제는 반구대암각화를 세계문화유산에 신청하는 과정이었다. 지난 2009년 12월 문화재청은 반구대암각화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신청했다. 당시 문화재청은 대곡천 주변의 자연환경과 국보 제285호인 반구대암각화, 그리고 국보 제147호인 천전리 각석을 '천전리 암각화군'으로 묶어 문화유산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등재를 신청했다. 다음해 잠정목록 신청이 받아들여져 반구대암각화는 암각화군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이름이 올랐고 이미 수년째 잠정목록으로 지정돼 있다.

 문제는 바로 이 당시의 잠정목록 등재가 반구대암각화의 보존해법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돼 버린데 있다. 대곡천 주변의 자연환경과 반구대암각화, 천전리 각석을 세트로 묶은 세계유산은 반구대암각화를 자연유산과 연계한 유산으로 혼돈하게 만들어 원형보존이라는 이상한 논리가 주류를 이루는 우를 범했다. 이런 어리석은 발상은 반구대암각화 하나보다는 주변과 연계한 것들을 함께 묶어야  세계유산 등재가 쉬울 것이라는 학계와 문화재청의 엄청난 패착이 만든 결과였다. 한마디로 무지의 결과다. 반구대암각화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차고넘치는 세계 문화유산인데도 이를 모르고 어정쩡하게 자연유산과 혼재한 문화유산을 신청해 대곡천 일대의 원형보존이라는 이상한 족쇄를 반구대암각화에 채워버린 셈이다. 반구대암각화의 실질적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 문화재 당국의 오판이 낳은 참사였다.

 잠정목록 등재 이후 많은 세계 암각화전문가들은 반구대암각화가 독보적이고 창의적이며 문화사적 가치가 탁월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더구나 천전리 각석과 억지로 연결고리를 찾아 암각화군으로 묶은 것은 전략적 실패라는 말도 나오는 상황이다. 반구대암각화 만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시도했다면 굳이 주변 경관 등의 조건과 관계없이 보존 노력에 대한 울산시의 지속적인 관심과 시민들의 문화재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도 밝히고 있다.

 문화재청은 당장이라도 이를 시인하고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분리해 반구대암각화를 단독으로 세계문화유산에 신청하는 절차를 밟아나가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당장 이를 시행해야만 문화재청은 역사와 민족앞에 더이상 죄를 짓지 않는 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부끄럽지만 인정하고 당당히 세계에 반구대암각화를 그 자체로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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