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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축구 선수들의 성조기에 대한 행동을 놓고 국제뉴스가 시끄럽다. 자세한 거야 미국사회 사정이니 잘 모르지만 한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인 국기를 대하는 태도에 대통령과 운동선수들 사이에 신경전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잘 몰랐던 사실, 성조기는 1777년 제정하여 주(州)가 늘어갈 때마다 별을 추가해 지금까지 26번 변경했다. 하와이가 1950년 마지막 주로 승격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 변천사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이번 사태가 없었다면 영영 몰랐을 것이다. 비록 별이 하나씩 늘어나는 단순한 것이라고 해도 이렇게 많이 변화했다는 것은 내 상식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시기는 미국이 세계무대에 주인공으로 등장해 자신들이 가진 힘을 알리고 세계정치를 주도하려던 때이다. 국제미술 중심지가 뉴욕으로 옮겨오고 신생 미국문화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막강한 경제력은 미국을 가장 빠르게 대량소비사회로 진입하게 만들었고, 시민들은 넘치는 상품과 크고 작은 쾌락에 매몰되게 했다. 이런 사회로 변할수록 우리는 주변에 넘쳐나는 물질과 광고에 무감각하게 변화된다. 시대의 변화는 작가의 예민한 감각을 곤두세우게 만들고, 영리한 작가는 사회현상을 반영한 작품을 만든다. 훌륭한 작가는 시대를 대표하고 미술역사에 남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남긴다. 영리한 작가 중에 한 사람인 '제스퍼 존스'는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그려서 자신들의 사회현상을 기록했다. 
 

 

▲ 사진, 제스퍼 존스, 깃발(flag), 신문콜라지, 유책, 왁스, 107.3×153.8cm, 뉴욕현대미술관(MoMA) 소장, 1954~55.

 그는 성조기를 유화물감으로 사실대로 묘사하지 않았다. 먼저 합판에 신문으로 콜라주해서 캔버스를 대신할 지지체로 만들었다. 번거로워 잘 쓰지 않았던, 왁스나 밀랍을 녹인 매제에 안료를 풀어쓰던 기법인 납화법을 사용해 성조기를 그렸다. 표면은 매끄럽지 않고 손으로 그린 흔적은 지지체에 그대로 남는다. 공장에서 생산된 국기는 천에 염색한 산업물품이다. 따지면 국기는 하고많은 산업물품 중에 하나인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국가 이미지, 정체성, 나라에 대한 충성 혹은 맹세 등을 상징화하는 과정을 거쳐 국기라는 의미를 생성한다. 하지만 산업물품으로서 국기는 이런 사실을 상기하지 못한다. 그런 것은 너무나 많다. 일상에서 보고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품은 여기에 속한다. 이 경계를 포착해, 미술과 상업 혹은 일상과 예술의 경계에 대량소비사회의 대표물품으로 미국의 성조기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의 작품은 당연히 많은 해석과 논란이 일었지만, 결국 미국 현대미술 그리고 팝아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로 만들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말 그대로 순수한 미국인이었다. 미국작가로는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처음 황금사자상을 받은 라우센버그와 같은 건물에 작업실이 있어 그와 매우 친밀하게 지냈다. 뉴욕에 화랑을 연 유대인 레오카스텔리가 라우센버그 작업실에 왔을 때 그가 소개한 작가가 제스퍼 존스이다. 미국미술에 대한 커다란 기대와 성공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던 신생화랑 주인이었던 레오카스텔리는 존스의 작품을 보자 바로 개인전을 열기로 계약하고, 1958년에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깃발> 시리즈를 비롯해 <과녁>, <숫자>, <지도> 시리즈로 명성을 쌓은 존스는 2011년 대통령 자유메달 시상식에서 자유훈장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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