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동안 사회적 갈등의 핵심이 되어온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문제가 일단락 됐다. 지난 주말 공론화위원회가 '원전 건설재개' 결론을 내리자 그동안 찬반으로 갈린 시민 사회 단체와 지역 주민들은 일단 결정에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일부에서는 여전히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번 결정을 누구보다도 반기는 쪽은 주민들이나 업계가 아니라 사실은 원자력 공학 관련 교수와 학생 등 전문가 그룹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공론화위원회의 숙의 과정에서 '재개' 의견이 점차 늘었다는 것을 보며 원전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했다"며 "충분한 팩트 체크를 통해서 국민에게 올바른 정보를 준다면 얼마든지 좋은 정책 방향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에너지문제나 기타 다양한 중요 정책 결정은 감정적 호소나 여론의 잣대가 아니라 팩트를 중심으로 한 정보의 재구성이라는 사실도 확인한 셈이다.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는 시민참여단이 숙의 과정을 거치며 건설재개 측의 승리로 결론 났다. 특히 신고리 5·6호기 건설지역인 울산에서는 1차 전화조사부터 '건설재개' 의견이 더 높게 나타났다. 공론화위원회가 공개한 '공론화 시민참여형조사 보고서'를 보면 이 같은 지역의 목소리가 잘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민간 여론기관이 실시한 '신고리 5·6호기 건설' 관련 여론조사에서는 재개와 건설 응답 차이가 4% 포인트 미만이었다. 심지어 리얼미터가 전날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는 '중단 43.8%', '재개 43.2%'로 0.6% 포인트밖에 차이가 안 났다. 이 때문에 공론화 출범 초기부터 과연 양측 응답 비율이 '오차범위'를 벗어날 수 있을지, 46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을지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하지만 공론화위가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를 물은 1차·3차·4차 조사결과 모두 처음부터 '건설재개' 의견이 우세했다.
이윤석 공론화위원은 "총 2만6명의 응답을 받아냈고, 일반 여론조사와 달리 '판단 유보'라 하더라도 설문조사 나머지 문항에 끝까지 응답하게 했다. 이 때문에 여타 다른 조사보다 이번 공론조사의 표본이 실제 '국민분포'에 가깝게 추출됐다"고 설명했다. 공론화 위원들은 4차 조사결과 양측 응답 차이가 '박빙'이 아니라 명확하게 차이가 났기에 권고안을 수월하게 작성할 수 있었다. 한국리서치 컨소시엄을 통해 실시한 1차 전화조사의 응답자 2만6명 중 재개 36.6%, 중단 27.6%, 판단유보 35.8%로 나왔다. 재개가 중단보다 9.0% 포인트 더 많았다. 비록 유보 의견이 많기는 하지만, 재개 의견이 유의미하게 우세했다. 1차 전화조사에서 원전 건설지역인 울산지역에 사는 응답자 447명은 재개 41.9%, 중단 32.6%, 판단유보 25.4%로 나뉘었다.
최종 선택에서도 권역별 찬반을 보면 수도권은 전국 평균과 유사한 경향을, 호남지역은 건설중단(54.9%)이 재개(45.1%)보다 높았다. 원전이 위치한 부산·울산·경남지역 시민참여단은 건설재개(64.7%)가 중단(35.3%)보다 배 가까이 높았다. 4차 조사에서 최종의견을 결정할 때 각 요인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살펴본 결과, 안전성, 환경성, 안정적 에너지 공급 순으로 나타났다. 건설재개를 지지하는 시민참여단들은 안정적 에너지 공급과 안전성을, 건설중단을 지지하는 시민참여단들은 안전성과 환경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제 문제는 그동안 쌓인 갈등의 골을 수습하고 건설 중단 3개월을 맞은 원전공사 현장에 대한 보완과 공사재개를 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함께 이번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국민적 성찰도 필요하다. 주요 결정사항 마다 공론화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결정을 떠넘길 것인지, 어차피 이번 결정이 선례로 남는 다면 이를 허용할 수 있는지 등 여러 가지를 다각도로 따져봐야 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앞으로의 에너지 정책이다. 물론 좁은 국토에서 원전을 계속 늘려갈 수는 없다. 지진 등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치명적이고 장기적이다. 점진적인 원전 축소가 바람직하고 신재생에너지 확충도 필요하다. 이번 공론조사에서 원전 축소 의견이 53.2%로, 유지·확대 45.2%보다 높게 나온 것도 그런 우려와 견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기술적·경제적 측면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전면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원전을 축소하더라도 국가 에너지 장기수급 전망, 신재생에너지를 포함한 다른 에너지의 대체 가능성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더구나 지정학적으로나 군사적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우리의 경우 여전히 원전이 핵심적인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에너지 정책까지 좌와 우,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적 갈등으로 전개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국가적인 손실임을 이번 사태가 잘 말해주고 있다.
- 기자명 울산신문
- 입력 2017.10.22 19:43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