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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오랜만에 읽은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열린책들, 2003)다. 『나무』는 단편소설집으로 작가 특유의 유모와 재치가 넘치는 18편의 이야기가 실려져 있다. 내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이 단편집 『나무』를 읽고 나서 부터였다. 작가의 100% 상상력에 의한 기상천외하고 황당무계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리얼리티가 있어서 너무 좋다.

 『나무』에서 제일 인상적인 작품은 <내겐 너무 좋은 세상>이다. 이 작품에는 뤽이라는 남자와 여자도둑이 등장한다. 뤽은 혼자 사는데 아침이 되면, "이봐요, 일어나야 돼요. 기상시간이에요"하고 자명종 시계가 깨어준다. 뤽이 침대에서 뒤치락거리고 있으면, "이봐, 내 말 안 들려, 이제 일어나야 한다니까!"하고 처음보다 덜 상냥한 목소리로 재촉한다. 뤽이 일어나면 집안에 있는 모든 가전제품들이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음성이 나오는 가전제품이 출시한지는 꽤 오래 되었다. '취사가 다 되었습니다. 밥을 저어 주세요" 라고 대부분의 전기밥솥에서 알림 소리가 난다. 우리집 전기밥솥도 그렇다. 처음 구입할 때만해도 마냥 신기 했는데, 지금은 당연시 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컨디션에 맞추어 대화가 가능한 가전제품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작품 속 뤽이 사는 세상에서는 정밀공학이 발달함에 따라 소형 스피커나 음성 합성기를 어디에나 설치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거의 사람처럼 말하는 가전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런 제품들은 확실히 삶을 안락하게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주방에는 주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커피가 나오고, 라디오는 스스로 날씨정보까지 제공해 주고 있다. 그러니까 기계들조차 제가 맡은 일을 주도적으로 하겠다고 기를 쓰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뤽은 때때로 소박하고 말없는 옛날 물건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론조사를 핑계로 들이닥친 여자 도둑에게 모든 물건들을 빼앗기고 말았다. 여자 도둑은 훔침 물건을 가지고 나가면서 마지막으로 뤽에게 입맞춤을 하고 사라졌다. 뤽은 말하는 물건들이 사라지자 한편으로는 시원해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녀의 입맞춤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여자 도둑을 다시 만나게 되어서 자신의 묘한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그러자 여자 도둑은 까르르 웃더니, 그의 가슴을 움켜잡고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가슴에 손을 넣고 인공심장을 꺼내었다. 뤽도 다른 말하는 물건들처럼 인공 심장을 가진 기계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것을 달고 있는 주제에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 앞에 있는 당신을 한낱 기계일 뿐이야"하는 것이었다.

 즉 <내겐 너무 좋은 세상>은 인간은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는 기계들의 세상이었던 것이다. 지구상에 살아있는 유기체가 사라진지 이미 오래된 세상에서 뤽은 자신만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기계들은 모두 자기가 살아있다고 믿고 있으며, 인간의 뇌 역시 자신은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믿도록 프로그램화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반전의 매력으로 인해 이 작품은 인기가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세기의 대국이 펼쳐졌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느니,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이 필요 없는 세상이 도래하느니 마느니 왈가불가하고 하고 있다.

 인공지능 알파고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내겐 너무 좋은 세상>이나 다 인간이 만들어낸 창작물이다. 늘 인간이 그 중심에 서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다면 미래는 가슴 두근거리며 기대가 되는 그런 세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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