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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한 켠에 이층 장롱 한 벌이 놓여 있다. 아직도 제 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고향집에 갔던 남편은 늦은 밤 이층 장롱과 함께 들어왔다. 지친 몸과 마음도 덩달아 소파에 부려지는 듯이 앉았다. 시어머니의 남은 유품이다. 각진 장롱 속은 텅텅 비었다.   

 시댁의 안방에서 시어머니의 몇 벌 되지 않은 여벌 옷가지들이 들어 있던 장롱이다. 당신이 생전에도 시름시름 모진 병마와 싸울 때까지도 사용했다. 그때와 지금이라고 별반 달라진 것이 없으나 나는 아직도 어머니의 장롱을 마주할 때마다 낯설다. 질이 좋은 나무로 만든 것도 아니고, 섬세하거나 튼튼하게 만든 것도 아니다. 어딘가 느슨한 것이 문양의 화려함도 없다. 그럼에도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인위적인 느낌이 덜함이다. 나무가 가지고 있는 결을 그대로 살려 질감을 담아낸 것이 좋았다. 그나마 내겐 위안이 된다.

 장롱은 어머니에게 비중 있는 세간중의 하나였다. 좁은 시골 방 뒷벽에 걸쳐있던 살강과 함께 휑한 시골방의 배경이 되었다. 언제나 수문장처럼 같은 자리에 각인되어 있다. 계절마다 달라질 것도 없는 시골 살림의 의복이다 보니 장롱 속은 늘 헐빈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머니가 떠나고도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당신이 없는 빈 방에 들어서면 한동안 장롱을 바라보게 된다. 수없이 많은 말을 마음으로 하게 한다. 한참을 그렇게 생각의 갈증을 풀고 나면 햇살이 널브러진 마루에 걸터앉는다. 볕살에 마음이 다독여지면 빈 집에서 조각처럼 흩어진 당신과의 추억들을 모은다.

 빈 장롱 속을 살폈다. 무언가 찾을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부질없는 망상이다. 모서리까지 구석구석 훑어보고 손으로 내벽을 만졌다. 머리카락 한 올도 잡히지 않는다. 내부에 발랐던 너덜해진 종이 부스러기들만 손끝에 닿았다가 흩어진다. "아~ 아~~ 어~엄니~~"내가 불러본 어머니라는 소리는 장롱이 공명통이 되어 더 크게 울리기만 할 뿐이다. 언제 왔는지 남편이 곁에 서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어쩌면 남편이 수없이 많이 불러보고 싶은 이름이리라. 

 장롱은 방치해둔 공간만큼 냄새도 각진 듯하다. 어머니의 옷가지들이 당신을 따라 떠난 날부터 제법 오랫동안 비워 있었던 탓일 게다. 늦게나마 장롱을 가져 온 것이 다행이었다. 남편에게도 미안함을 조금은 덜어낸 것 같았다. 남편은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이니 가지고 왔으면 하는 기색이 보였지만 나는 쉽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아마도 시골에 오래도록 퍼져서 우리의 삶에 뿌리 깊게 안착되어 있던 미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병으로 떠난 이의 물건을 집에 함부로 들이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라는 나의 선입견도 있다. 부모로부터 보고 들었던 과거의 생활 문화가 미신으로 치부되어 과학으로 증명되는 것만 믿으려고 하는 현실에 샤머니즘은 적잖은 혼란 속에서 격리되기도 했다. 

 어머니는 많지 않은 나이에 지난고난 모진 병을 앓다가 떠났다. 당신이 쓰시던 물건에 쉬이 마음이 가지 않았다. 나 또한 그다지 건강한 육체를 가지지 못해서 더 그랬으리라. 그러나 더 솔직해지면 살갑지 못했던 고부사이 때문이었던 탓도 있다. 내가 어머니께 마음을 더 열지 못함이다. 그래서 당신이 쓰시던 물건에도 쉽게 마음이 옮겨 가지 못했던 것 같다. 장롱은 그냥 장롱일 뿐이다.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을 두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생각이 많아진 것이 조금은 멋쩍다. 멀쩡한 장롱을 바라본다.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는 듯하다. 자상하던 당신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흘러나올 것만 같다. 마음이 짠해진다.

 원칙이나 형식보다 더한 것이 마음이 흐름인 것 같다. 어머니의 길지 않은 시간동안 가족에게 곡진했던 삶도 당신의 자리에서 나름으로 전통을 지키려고 했던 것 같다. 어머니의 바람직한 문화의 방향은 일회용이 아니라 연속성을 가지고 이어지는 것이리라. 어머니의 삶이 나로 이어지는 것처럼 나의 삶이 내 아이에게로 이어가게 하고 싶다. 장롱 안에 들었던 옷가지들이 가끔은 어머니의 생을 따뜻하게 했듯이 장롱이 만들어온 반백의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고 싶다.

 시골집 같은 살강 위는 아니라도 거실 벽면에 자리를 정하고 걸레질을 했다. 어머니와 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는 시간이다. 반질반질한 장롱을 놓고 보니 처음부터 제 자리인양 어색하지 않다. 빈 장롱에는 두꺼운 계절 옷들이 드나들 것이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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