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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주말 반구대암각화를 찾기로 했다가 연기했다. 반구대암각화는 총리들의 단골 방문지다. 최근에만 이미 4명의 국무총리가 반구대암각화를 찾았고 이 총리까지 오면 5명의 총리가 방문하는 셈이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정운찬 국무총리부터 한승수, 김황식, 정원홍 총리에 이르기까지 최근 정권의 모든 총리가 반구대암각화를 찾았다. 총리가 찾았으니 정치권의 실세들은 두말할 것 없다. 문제는 그 많은 인사들이 반구대암각화를 찾았지만 아직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낙연 국무총리의 방문은 그런 점에서 기대가 컸다. 일단 연기됐으니 조속한 시일 내에 방문 일정을 잡아 주리라 기대한다. 무엇보다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는 이 총리의 스타일이 반구대암각화 방문을 통해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이 총리가 반구대암각화 방문을 계획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만약 이 총리가 반구대 암각화를 방문 한다면 이는 현 정부 실세의 첫 방문으로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정부의 보존 의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 들어 이 총리는 범정부적 정책조정, 갈등현안, 민생현안을 점검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갈등관리 정책협의회를 3년 만에 재가동 중이다. 갈등관리정책협의회는 국무조정실장이 주재하고 각 부처 차관들이 참석해 갈등 사안을 논의하는 회의체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 거창구치소 이전, 한일 위안부피해자 합의 등 25개 과제를 선정해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국무조정실은 지난달 19일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국토교통부, 문화재청, 한국수자원공사, 울산시 등이 참여한 가운데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관계기관 협의회'를 연데 이어 25일에는 실무적인 조정회의도 있었다. 이 자리에서 국무조정실은 문화재위원회가 거부한 생태제방안을 전향적으로 재논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런 점에서 이 총리가 직접 현장을 찾아 반구대 암각화 보존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가 이뤄진다면 의미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반구대암각화의 경우 문제의 핵심은 정부와 문화재청이 제시한 안들이 10년이 넘는 반구대암각화 보존 논의 과정에서 무산됐거나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확인된 안이라는 점이다. 수문설치안은 수문을 통해 홍수나 폭우 등 긴급상황에 물을 신속하게 방류,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것을 막는 것이다. 지난 2003년 암각화 보존방안이 수립될 때부터 거론됐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대암댐과 운문댐에서 맑은 물을 끌어오자는 계획도 현실성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계획은 정부가 2009년 발표한 2025 전국수도정비 기본계획에 담긴 내용이다. 부족한 용수 12만t에 대해 울산권 맑은물 공급사업을 추진, 공업용수 전용댐인 대암댐을 생활용수로 전환해 5만t을 확보하고, 운문댐에서 7만t을 가져오자는 것이다. 운문댐의 물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대구권의 취수원을 구미로 옮기는 대구·경북권 맑은물 공급사업이 선행돼야 한다.


 이 총리는 현장을 찾아 문화재위가 고집하는 수문설치안이 무엇이며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느냐는 점도 분명히 살피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수문설치안은 사연댐 여수로 높이를 60m에서 52m로 낮추어 암각화가 물속에 잠기지 않도록 하는 안이다. 이는 암각화 주변 환경을 훼손하지는 않지만, 사연댐의 물공급 감소량을 운문댐을 비롯한 타지역에서 공급하는 전제하에 수립된 안이므로, 운문댐과 타 지역의 물공급계획이 무산된 상태서는 고려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위원회가 수문설치안을 고집하는 이유는 암각화를 물 밖으로 끄집어내야 세계유산 등재가 가능하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 때문이다.


 물 밖으로 꺼내기만 하면 암각화도 보존할 수 있고, 유네스코 등재도 가능하다는 문화재위원회의 논리는 참으로 딱한 주장이다. 이들이 고집하는 원형보존이나 형상변경 불가는 처음부터 잘못된 접근이다. 반구대암각화는 불행하게도 사연댐이 들어선 이후 발견됐고 그 가치를 알았을 때는 이미 주변의 자연경관이 원형을 잃은 상태였다. 더구나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곡천과의 조화 역시 대곡댐 건설로 그 원형이 훼손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원형 운운하는 것은 자가당착이자 아집과 독선에 불과하다.


 유네스코가 말하는 보존은 지금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보존을 찾아가는 노력이다. 관점이 잘못됐으니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억지스러울 수밖에 없다. 문화재위원회는 유네스코 등재 기준을 잘못 해석해 생태제방안을 무조건 거부하고 있지만 암각화 주변에 물이 항상 고여 있는 것 역시 주변 지형과 환경의 변경에 해당된다는 자가당착에 빠진 셈이다. 더구나 물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수문설치 문제를 부각하는 것은 암각화 보존도 못하고 물 부족도 악화시키는 말 그대로 최악의 안이 된다. 반구대암각화를 자체로 보존할 생각은 하지 않고 허구헌날 원형 운운하거나 물 문제 운운하는 것은  말 그대로 시간 낭비다. 그런 점에서 이 총리의 반구대암각화 방문은 현실을 냉정하게 살펴 성과를 만들어내는 자리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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