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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이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었나보다. 배냇골 가는 길을 왼편에 두고 오른쪽 밀양 방면으로 접어들어 이만큼 왔는데도 그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 가려면 어디쯤에서 가닥을 잡아야 할까. 망망대해에 내던져진 것 같은 막막함이 엄습한다. 마침 공간 여유가 있는 갓길이 있어 잠시 차를 세운다. 건너편 능선들이 아름다워 그쪽을 향해 차머리를 갖다 댄다.

 짙푸른 초록을 가라앉혀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산이 고운 빛깔로 가다듬고 있다. 우뚝우뚝 겹을 이룬 산등성이가 골짜기를 드리우며 부드럽다. 그녀와 차 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런 여울진 능선을 한참씩 바라보곤 했다.

 죽음과 가까운 거리에 있던 건 나였다. 이별은 함부로 무분별해서 그녀를 떠나게 했다. 건강하고 생기 가득했던 그녀는 급성장암으로 손 쓸 새 없이 하늘나라의 별이 되고 이곳엔 믿기지 않는 부재만 휑뎅그렁하다. 우리 집 식탁의자엔 그녀의 웃음소리가 나비처럼 나풀거린다. 슬픔은 질겨서 그녀가 없는 3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3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때 없이 심장이 뛰며 만연한 피로감이 일상생활을 몹시 힘들게 했다. 남편과 두 아이의 뒷바라지만으로도 몸을 가누기 어려웠다.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받았다. 20년 후에 만성신장병으로 정체를 드러낸 병이 그때는 병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웃들은 친절해서 시장보기나 쇼핑 등에 합류를 권하며 이웃사촌의 울타리를 너끈히 내주었지만 내 건강은 점점 땅속으로 꺼져들 듯 탈진되어 갔다. 좋은 사람들과 원활히 보조를 맞추지 못해 어울림에 엇박자를 놓게 되어 미안함이 연속되었다. 생각다 못해 내가 그들한테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고향인 부산을 떠나 이사 온 낯선 울산에서 친구도 없는 상황으로 좋은 이웃을 비켜서는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고 살고 있는 내 앞에 어느 날 나타난 사람이 그녀다. 하루의 외출 뒤에 이삼일씩 누워 휴식을 취해야 하는 나의 생활리듬을 그녀는 자연스럽게 맞춰 주었다. 매사를 선명하고 개운하게 임하는 밝은 그녀가 곁에 있어 내 삶의 한편에 진실한 충만이 고여 들었다. 그녀는 외려 내게, 사람을 참 편하게 하는 면이 좋다고 말해 주어 더욱 고마웠다. 서로 살림하는 주부로 만난 우리는 15년을 함께 했다.   

 첩첩이 고개를 돌아드는 산마다 단풍이 꽃다웠다. 신비로운 모양으로 산에 박혀 있는 바위들에 의미를 만들어 덧입히고 감탄사를 질러대며 둘이서 까불었다. 산을 넘어 평지를 달린 끝에 만난 식당은 소박한 음식이 정갈하고 맛깔스러웠다. 우리 둘만의 숨겨 놓은 보물식당으로 지정하곤 신이 나서 희희낙락했다. 그녀는 특별하게 특별한 사람처럼 길을 잘 기억했다. 길눈에 젬병인 나는 보물식당 길을 전혀 몰라도 괜찮았다. 그녀가 있으므로.

 오늘 찾아 나선 길이 그 길이다. 그녀와 나만 아는 그곳에 가면 그녀가 앉아 있을 것만 같아 길을 나섰다. 세 번이나 갔던 길을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앞서 산 세상을 전생이라 한다던가. 이미 저세상에 가 있는 그녀는 전생이 된 이 세상을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가 지낸 세월을 추억하며 나를 떠올리려나. 꽃들의 소곤거림처럼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시간들이 전생으로 봉인되는 끈 한 자락을 먹먹하게 잡고 있다. 어제까지의 전생이 오늘의 이생에 이르러 있고 이생은 내생에 빈틈없이 닿아 있어 언제라도 그녀가 햇살 속으로 걸어올 것만 같다.

 수없이 쌓여 있는 어제들, 오늘과 이어지는 내일들이 내게도 전생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되돌아보면 이를 데 없이 평범한 생이다. 강변을 서성이는 작은 새의 발목 같이 가늘고 변변찮지만 경쟁처럼 뒤섞여 사는 세상의 틈바구니에서 삶의 골격을 매만지는 일을 소중히 했다. 내 얇은 마음 밭 일구는 일을 게을리 해본 적은 없다. 한평생 예쁘게 살다간 그녀를 정성들여 가꾸며 살아온 내 전생 안에 앉힐 수 있어 다행이다. 편하게 산다며 되는대로 마구 살았더라면 어쩔 뻔했나 싶다.

 조선시대 산문엔 절친한 우정에 관한 글이 많이 있다. 책을 읽다 벗과 허물없이 지내며 서로 귀하게 여기는 문구를 읽어 주면 그녀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생지명'은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묘지명이다. 당시의 작가들은 벗의 생지명을 서로 써 주며 즐거워했다. 18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문단의 거두였던 혜환 이용휴는 시인이며 화가인 허필의 부탁으로 생지명을 써준다. "나는 요행히 자네와 같은 세상에 살고, 또 자네와 친한 사이지…" 이 구절을 듣고 그녀가 감동 받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아! 이용휴라는 사람은 어떻게 이런 말을 생각했지? 우릴 두고 하는 말이다. 참 좋다." 나는 망자가 된 그녀를 위한 글 한 줄 써야 했다. "나는 요행히 너와 같은 세상에 살고, 또 너와 친한 사이여서 끝 간 데 없이 행복했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써 놓고 목 놓아 울었다. 

 그녀 없이 보물식당을 찾아갈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천 개의 마음보다 단 하나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다. 친구야 부르며 따뜻한 손 한 번 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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