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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가 에리히 프롬은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꽃에 대한 일화를 들었다. 들판에 핀 아름다운 꽃을 보았을 때, 그 꽃을 꺾어 꽃병에 꽂는 것이 소유적인 삶이라면, 그 꽃을 그대로 두고 바라보는 것이 존재적인 삶의 양식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지만, 그 사랑이 상대를 옭아매고 소유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소유적인 사랑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아낌없는 애정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새를 사랑한 새장'은 사랑의 방식에 대해 철학적인 고민을 하게 만드는 그림책이다.


 추운 겨울 숲에 텅 빈 새장이 홀로 있다. 어느 날 외로운 새장에게 어여쁜 홍방울새가 찾아온다. 홍방울새를 사랑한 새장은 나무의 정령에게 소원을 빌어 마법의 힘을 얻는다.
 새장은 새를 위해 늘 따뜻하고 아늑한 보금자리, 맛있는 지렁이 음식, 밤마다 자장가를 불러주며 온 마음을 다해 홍방울새를 보살피고 사랑해준다.
 아낌없는 사랑에는 제약이 있다. 새장은 홍방울새가 달아날까 두려워 수정 자물쇠를 채워둔다. 홍방울새는 외로워하는 새장을 가엾이 여겨 좁은 새장에서 하루하루를 지낸다.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가 좁은 새장에 오랫동안 갇혀 지내자 병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병든 홍방울새를 발견한 까마귀가 수정 자물쇠를 부수며 함께 나가자고 외친다.
 하지만 새장을 사랑하는 홍방울새는 시름시름 아프면서도 새장 곁에 남는다. 이처럼 사랑이란 이름 아래 서로를 얽맬수록 관계는 점점 악화될 뿐이었다.


 결국 새장은 죽어가는 홍방울새를 살리기 위해 문을 열어 날려 보내고 만다. 다시 혼자가 되어 텅 빈 새장에게 다음해 겨울 홍방울새가 날아온다. 다시 새장은 홍방울새를 따뜻이 품어주지만 문은 항상 열어둔다. 언제라도 새가 자유롭게 나갈 수 있도록.
 상대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족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새와 새장의 이야기를 보면서, 자식에게 집착적인 사랑을 하는 부모가 떠오른다. 자녀를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자녀에게 꿈을 강요하거나 지나친 학업을 강요하는 일이 너무도 많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꿈과 자유를 존중하고,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주는 새장과 같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 권은정 아동문학가
 나도 아직은 새장의 따스한 보금자리 같은 부모이다. 아이들이 어려서 엄마 품에 안겨 해맑게 웃지만 언젠가 엄마 품보다는 친구들과 더 놀고, 혼자 있는 것을 편해할 것이다.
 아이가 꿈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반항하고, 나와 부딪칠 때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랑으로 아이를 한결같이 응원하고 믿어주고 존중해줄 수 있을까.
 나도 아직 부족하고 서툰 부모이기에, 아이를 사랑이란 이름으로 소유할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새장의 마음을 기억하고 싶다. 훗날 아이들이 자유롭게 세상을 향해 날갯짓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연 새장이고 싶다. 권은정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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