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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박정희 전대통령과 불가분의 관계라 할 수 있는 도시다. 지난 1962년 울산 공업센터 기공식에서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이렇게 읊었다. "4000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 숙원인 부귀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는 이곳 울산을 찾아 신 공업도시를 건설하기로 했다. 이는 민족중흥의 터전을 닦는 것이고, 국가 백년대계의 보고를 마련하는 것이니 자손만대에 번영을 약속하는 민족적 궐기다" 그로부터 60년, 울산은 대한민국 산업수도이자 세계 조선업과 자동차산업의 심장이 됐다.

어제는 박정희 전대통령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앞서 지난 13일에는 서울 상암동 박정희대통령 기념도서관(박정희 도서관) 앞에서 시민단체들의 소란이 있었다. 박정희 동상 건립에 찬성하는 대한애국당 등 200여명과 반대하는 민족문제연구소 등 100여명이 박정희 도서관 계단 위아래에서 거친 설전을 주고 받았다. 경찰은 계단을 사이로 의경 1개 중대 80여명을 배치해 기증식이 열린 찬성 측 행사장과 반대 집회가 열린 인도 사이 계단을 두 겹으로 차단했다. 이날 예정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건립은 4m 높이 동상이 그려진 현수막으로 대체됐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쪽은 동상 건립 심의 절차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따라 직접 동상을 세우지 않고 시민단체 '이승만·트루먼·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 의 동상 기증 증서를 받는 것으로 행사를 대신했다. 기증식이 열린 시각 도서관 계단 밑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등이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시민의 땅에 박정희 동상이 웬 말이냐"며 "친일파이자 독재자의 동상을 세워서는 안된다"고 규탄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박정희 전대통령은 탄생 100주년을 맞았지만 그의 분신인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이 이어진 시점이어서 축하분위기는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는 우리 민족사에서 중요한 한 획을 차지하는 역사이자 민족 대전환의 중대한 이정표임은 분명하다. 박정희가 군사정변을 통해 집권한 1961년 82달러였던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79년 1,647달러로 급증했다. 수출은 4100만달러에서 150억달러로 늘어났다. 단순한 외형적 변화지만 이 수치는 너무나 많은 것을 함의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의 변화는 이같은 수치적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난을 이겨내고 다함께 '잘살아 보자'는 정신은 무기력해져 있던 국민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더 이상 가난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근대화의 영웅'과 '무자비한 독재자'라는 상반된 평가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박정희 이후의 한국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박정희가 우리 현대사에서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민주화과정이라는 혹독한 아픔을 겪으면서부터였다. 특히 김대중과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정부가 집권하면서 박정희 시대의 역사는 공보다 과가 더 크게 부각됐고 그에 따른 사회적 갈등도 커져갔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몰락과정이었다. 무엇보다 성공한 대통령이 아닌 오욕의 정권으로 기록된 박근혜 정부의 몰락은 박정희 체제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더욱 끌어올리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정권의 부침과 딸의 정치적 몰락 등 외적 요인으로 박정희 탄생 100주년은 논란의 중심에서 혼란스럽게 지나갔지만 울산에서는 그가 대한민국 근대화의 기적을 외친 현장을 기념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바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치사문을 읽은 울산 앞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납도마을에 기념관을 만드는 일이다.

울산은 이 기공식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공업도시로 성장해 산업수도로 불리게 됐다. 당시 기공식이 열렸던 곳은 현재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KEP)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이곳에 기념관이 들어선다. 울산 남구는 최근 매입한 KEP 냉동창고를 내년 12월까지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으로 리모델링한다. 1973년 지어져 지난해 폐쇄된 냉동창고는 59억 원을 들여 2331m² 터에 지하 1층, 지상 6층, 연면적 6200m² 규모로 리모델링한다. 남구는 29억 원에 건물과 부지를 사들여 정밀안전진단과 내진성능평가를 끝냈다. 냉동창고 앞에는 '한국 공업입국의 출발지'라는 비석과 사진이 전시돼 있다. 1층에는 기공식 기념관과 기념품점이 들어선다. 박 의장의 기공식 시삽(삽으로 처음 흙을 떼어내는 것) 장면과 학생들의 환송 박수에 거수경례로 답하는 사진을 포함해 관련 자료를 전시한다. 이 사업은 비록 논란의 중심에 선 박정희지만 울산의 오늘을 만든 주역으로 그의 과보다 공을 기억하려고 하는 작업이자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오늘의 점검이다. 박정희의 정치적 과오를 잊고 묻어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공과 과를 분명히 하고 울산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계승해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밝혀둘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박정희 논란은 영 뒷맛이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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