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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김복수
 
한때는 사는 게 답답하여
우듬지에 올라 세상 구경하려 했다
그러나 곁에 있던 토담이 가슴 내어주었다
묵묵히 제 갈 길 지켜온 텃밭이
고추며 상추의 파란 모습 보여주었다
나는 이웃이란 것을 보았다
 
토담의 어깨에 팔을 얹고 너른 잎 부지런히 피웠다
벌 나비가 찾아 왔다 반가워 가슴에 품었다
그제야 호박이 되었다
호박이 되고 나니 둥글게 보였다
내가 둥그니 하늘도 둥글고
해도 둥글고 달도 둥글었다
 
칠십년 살아온 호박은
별이 둥글지 않아도 나무라지 않았다
그냥 잊고 살았다
바람도 덤으로 불라 하였다
 
사는 것이
왜? 라고 하기보다는
네! 라는 말이 따뜻했다
 

●김복수 시인- '시사 문단' 신인문학상 등단, 대구 달성군 '비슬산 참꽃축제' 작품 대상, 대구 신문 시창에 시가 추천, 시사랑 사람들 동인, 한국문협 장성지부 회원.

 

▲ 서순옥 시인

"/호박이 되고 나니 둥글게 보였다/내가 둥그니 하늘도 둥글고/해도 둥글고 달도 둥글었다"
 마냥 푸른잎이려거니 하면 어느새 꽃이 되어 있었고, 또 마냥 꽃이거니 했건만 세월은 궁둥이 둥실 살찌운 호박을 만들어 놓았다. 칠순(고희, 종심, 희수)에 살아온 호박은 둥글지 않은 것에 나무라지 않았다지만, 쉰(지천명)에 살짝 한 발 걸쳐놓고 무슨 천명을 읽을까마는 나는 아직은 엉덩이에 말라붙어있는 한때 화려한 꽃의 흔적을 꽁지로 달고 있고, 그 뾰족뾰족했던 흔적을 바람에 맡겨 지우려 애쓰는 중이다.
 살아가면서, 살아오면서 소설 몇 권 품지 않는 자 어디 있으랴마는 그런 인생의 득도를 호박에 비화하니 저렇게도 한 폭의 그림이 되는 것을 김복수 시인에게 배운다. "왜? 라고 하기 보다는 네! 라는 말이 따뜻했다" 오십 년 살아온 호박이 칠십 년 살아온 호박에 감히 대적하겠습니까마는 "네! 라는 따뜻한 말만 하고 살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이유는 호박이 아직 덜 익은 탓. 이십 년을 더 살아 세상 이치를 더 깨닫게 되면 하늘도 둥글고, 해도 둥글고, 달도 둥글고, 나 또한 누르게 익은 둥근 호박 한 덩이가 되어 있지 않을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가 나지 않도록 둥글게 살라는 시인의 당부가 새삼 고마워진다. 서순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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