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구대암각화 문제에 대한 새 정부의 의지는 대단해 보인다. 박근혜 정부 때의 임시방편식 보존대책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이는 과거 정부와 확연히 달라진 문제다. 그 중요한 사례가 바로 생태제방안에 대한 적극적인 중재의지다.

국무조정실은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위원회가 부결시킨 반구대암각화 생태제방 보존안에 대해 조건부 수용을 놓고 문화재청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문화재청의 아집과 불통이다. 조건부 생태제방축조안의 세부안을 두고 문화재청간이 배수의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중재에 나선 국무조정실의 보다 적극적 개입이 필요해진 이유다.

울산시에 따르면 최근 국무조정실 주재로 열린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관계기관 협의회'에서 조건부 '생태제방축조안'이 논의 중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새 정부는 국무조정실장이 주재하는 갈등관리정책협의회 25개 과제에 반구대암각화 문제를 포함시켜 중재에 나서고 있다.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두고 울산시와 문화재청의 갈등이 10년 넘게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서다.

국무조정실의 중재 결과 조건부로 생태제방축조안을 추진해보자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이 방안은 울산시가 제시한 것으로 문화재청이 생태제방축조안에 대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한 검증을 먼저 하자는 것이다. 검증 분야는 그동안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생태제방축조안을 부결했던 사유들로 △제방 설치 지점 공룡화석 존재여부 △제방설치로 미시기후(바람의 방향과 속도, 습도, 기온)변화가 암각화에 미치는 영향 △제방 설치작업 진동으로 인한 암각화 훼손 여부 등이다.

문제는 세부 내용에서 울산시와 문화재청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울산시는 검증에서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생태제방축조안 추진을 확정하자는 입장이다. 문제가 발견되면 깨끗하게 포기하겠다는 조건도 달았다.

반면 문화재청은 검증과 생태제방축조안 추진 여부는 별개로 논의될 사안이라 주장하고 있다. 검증에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더라도 추가 논의를 거쳐 추진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생태제방안이 반구대암각화의 훼손을 가속화 한다며 반대해온 문화재청이 또다시 딴지를 건 셈이다. 이런 식이라면 어떤 안이 나와도 어깃장을 놓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해졌다.

지난 7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심의에서 생태제방축조안을 세 번째로 부결했고, 10월에는 생태제방축조안을 더 이상 논의할 필요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 맥락에서 생태제방안은 더이상 가치가 없다는 선을 그어놓고 국무조정실이 중재를 하니 응하는 시늉만 하는 셈이다. 이는 국무조정실의 중재로 생태제방안을 다시 논의할 경우 '문제없을 시 추진 확정'이라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것은 조직 내부의 방침을 사실상 뒤집는 셈이라 부담이 크다는 분석이다. 울산시는 추진 여부가 확정되지 않으면 검증은 무의미 하다는 판단이다. 문화재청이 여전히 수문설치안(수위조절안)을 주장하고 있어 검증에서 문제가 없어도 추후 논의에서 충분히 반대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이 문제가 장기화될 경우 정치 쟁점화되면서 지역 내부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들이 주장하는 맑은 물 대책은 타 지역에서 물을 끌어오는 방안이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방안은 타 지자체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물 사용량이 증가하는 시점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2009년부터 정부의 맑은 물 공급사업에 포함돼 운문댐 물을 끌어오는 방안이 추진됐지만 관계 지자체인 대구시, 구미시가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방침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의 여론이 훨씬 중요하게 반영되는 문제인 만큼 운문댐 외 다른 지역에서 물을 끌어오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특히 내년 6월 울산시장 지방선거에 김기현 시장과 송철호 위원장 대결이 확실시되면서 반구대암각화 내부 갈등이 극대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또다시 반구대암각화가 정치권의 선거놀음에 희생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반구대암각화의 경우 새누리당 집권 시절부터 문재인 정부 출범 때까지 10여년을 끌고 있는 사안이다. 문화재계의 국정농단이라 할 만한 사안이다. 이는 결국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가 아집과 불통으로 원형보존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우면서 벌어진 결과다. 국무조정실이 이 문제에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한다. 핵심은 원형보존이 아니라 반구대암각화를 물에서 건져내는 일이다. 세계 어느 곳에도 자연유산이 아닌 문화유산을 가지고 주변 원형 운운하며 딴지를 거는 일은 없다. 국무조정실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한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