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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언니들 왜 피아노 가르쳐줘? ""응, 엄마가 언니들 잘 칠 수 있도록 도와 주는거야. 엄마는 피아니스트야. 또 피아노 가르쳐 주는 사람이구" "아니야, 엄마는 내 엄마야."

 뜬금없는 꼬맹이의 질문을 되새겨보다 또다시 늘상 스스로에게 하는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온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그럼 늘 옆에서 '넌 서아름이고 여긴 어디다.' 친구의  간단한 대답이 돌아오곤 했는데…. 지금은 서아름이긴 한데 앞에 너무 많은 수식어가 붙는 내가 되었다. 어릴 땐 그저 서아름 이었는데 말이다. 정신없이 하루를 살다보면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버리고 그렇게 벌써 한해가 끝나간다. 나는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깊은 한숨이 나온다. '잘 살고 있는 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난 누군가…' 정말 심각한데 이 순간 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생각났던 걸까? '딴딴딴 따~ 딴딴딴 따~' 피식 웃음이 나와 입으로 흥얼거리는데 옆에서 꼬맹이 왈 "엄마! 이 노래 무서운 노래잖아"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운명> '교향곡 제5번 c단조 op.67' 의 첫 부분 '딴딴딴따~ 딴딴딴 따~~' 은 한 번 들으면 잊혀 지지 않을 정도의 강한 여운과 힘을 갖고 있다. 전곡을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수 있겠지만 첫 부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될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곡의 첫 도입부를 가르켜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고 베토벤이 말한 것에서 비롯되어 <운명교향곡>이란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의 진위여부를 두고 왈가왈부 하지만 어찌됐건 이곡의 첫 시작과 베토벤이란 작곡가 그리고 운명이란 단어 이세가지 만으로도 이곡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강렬한 곡임에는 틀림없다. 그의 순탄치 않은 인생을 본다면 이 부분은 비극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이 비극을 정면 돌파 하겠다는 비장한 의지까지 함께 느껴진다.

 이곡을 쓸 때 30대 중반이였던 그는 20대 중반부터 발병된 귓병은 악화된 상태였고 사랑하던 여인과도 헤어지며 그에게 인생은 너무도 가혹하게 굴던 잔인한 시절이였다. 또한 나폴레옹이 그가 살던 빈을 점령하며 전쟁 속에 혼란스러운 세상이였다. 그리도 힘들었던 시절 그는 주저앉기 보다는 운명을 극복하는 인간의 의지와 환희를 담은 곡을 만들어낸다. 사실 베토벤은 어린 시절부터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랐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귓병이 발병한 이후로는 더더욱 힘든 인생을 살아야만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은 그의 인생이 얼마나 불우하고 처참했는지 보여주기 보다는 대신 그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고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곡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의 인생을 아는 사람은 인간이 극복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 그에 대한 경외심이 절로 생기도록 할뿐이다.

 "나는 세상이 주는 명성이나 비판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다. 오로지 나는 내 마음에 있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필수의 수단으로 작곡했을 뿐이다." 베토벤이 제자 체르니에게 남긴 어록 중에 한부분인데 이 대목이 묘하게 내 마음에 들어왔다. 며칠 전 지휘자 선생님과 대화하던 중에 "넌 피아노 치는 게 좋니?" 란 대답에 예, 아니오가 아니라 나의 투덜거림이 나도 모르게 그대로 나왔다. "연습도 못하고 활동도 어렵고 애들 보는 것만도 너무 벅찬데… 다른 친구들은 활동도 많고… 이럴 거면 그 오랜 시간 왜 공부하고 고생했나 싶고 나는 뭐 하는 사람인가 싶고…" 피아노 치는 게 좋니? 라는 질문의 대답과는 멀었지만 내 속내를 이해하기라도 한 듯 "남들이 뭐라 든 그게 뭐가 중요하니? 욕심을 버려. 너는 지금도 충분히 넘치도록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어. 지금 너를 바라보는 애들은 니가 우주고 세상의 전부야. 너나 나나 세계적인 음악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뭐 어때? 60세에 연주회 할 거라 생각하고 준비하면 아직 음악가로 살 시간은 충분하단다" 가슴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또 한 번 베토벤의 대화록 중에 한 구절 '순종하라! 운명에 순종하라! 그대에게 희생만을 준다 할지라도. 노예가 된다 해도…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영원하다' 내가 누군 인지 계속해서 되물으며 나를 찾고 싶던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얼마나 무의미 한 것 이였는지 깨달으며 오늘 하루도 감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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