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점잖은 사람에게 정치란 어울리지 않는 모양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차기 대통령 선호도 조사에서 줄곧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다, 올 지방선거 이후 추락을 거듭하던 고건(70) 전 총리가 16일 대선 중도사퇴를 전격 선언했다. 고 전 총리는 그동안 '무색무취' '모험을 하지 않는 정치인'이라는 평가와 함께 그런 정치행태로 인해 '기회주의자'라는 극단적인 평가까지 받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세인의 비판에도 불구, 그만큼 국가경영에 필요한 경륜과 인품을 갖춘 인사도 찾아보기 힘들다. 때가 아니면 나서지 않는, 은인자중할 줄 아는 행정가이자 정치인을 앞으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을 듯 해 그의 퇴진이 많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고 전 총리는 이날 오후 1시30분 종로구 연지동 여전도회관 14층 강당에서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정치를 할 수 없다"며 대선 중도하차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정치권에 일대 소용돌이가 쳤고, 여·야를 막론하고 그 속내를 읽기에 분주하다. 그동안 정중동 행보로 일관해 온 고 전 총리가 1년여 가까이 걸어온 대선주자의 길을 갑작스럽게 그만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식으로 정치할 수 없다"는 그의 말 한마디는 복잡한 속내를 다의적으로 내포한다. 일단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의 갈등이 그의 감정선을 건드렸다는 분석이 많다. 결국 고 전 총리는 자신에게 불어닥친 위기를 정면돌파하지 않고 중도 포기를 한 셈이다. 평소 "나서야 할 자리와 물러서야 할 자리를 누구보다 잘 안다"는 고 전 총리의 지론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특히 '더 이상 정치판의 정략에 휘말릴 수 없다'는 나름의 고집으로 풀이된다. 한편으로는 평소 '행정달인'으로 불리며 깔끔한 국정운영이 돋보였던 고 전 총리였으나 '정치인 고건'으로서는 과단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함에 따라 스스로 발을 뺐다는 분석도 있다. 어찌됐든 이로써 대선을 11개월 앞둔 정치지형에 다시 한 번 후폭풍이 강하게 몰아칠 전망이다. 범여권의 대통합 구도에 구심점이 없어진 한편, 야권에서도 '확실한(?)' 경쟁자를 잃어버려 대선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고 전 총리, 개인으로서도 일생의 오점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고 전 총리는 그동안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두며 상대적으로 참신한 이미지를 가꿔 왔다. 그래서 비정치권에 있으면서도 늘 '대안'으로 여겨져 왔던 것이 사실이었고,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상황이 오히려 많은 기대를 갖게 했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