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달 14일 고등학생 2백여명이 현대예술관 소극장 객석을 가득 메웠다. 인근 고등학교에서 단체로 연극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을 보기 위해 온 것이다.


 입장 전부터 길게 줄지어 선 학생들은 연극에 대한 기대감으로 얘기꽃을 피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들 학생 중에는 지금껏 연극을 처음 본다는 이들이 대부분.


 지난 해를 기점으로 학생들의 공연관람이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다. 관심있는 학교를 중심으로 중간고사를 치른 후나 수능을 치른 고3 학생들이 단체로 공연장을 찾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극히 몇몇 학교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에서는 3년간 극장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졸업을 하는 학생수가 허다하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학생들의 정서 장애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감 마저 낳게 한다.


 아직도 중·고등학교의 음악, 미술 수업은 이론 위주로 짜여지고 교구를 이용한 작품감상 몇번이 고작이다. 현장감있는 체험교육은 딴세상의 이야기다. 아니, 요원하다는 말보다는 관심이 없다고 하는게 맞겠다.


 몇몇 일선학교 교사들을 만나 이유를 들어봤다. 교과과정에도 없고 의무화되어 있지도 않은 현장학습을 하려면 일정을 짜고 비용을 조성하고 이동에 걸리는 번거로움과 안전문제까지 고려해야 하니 번거로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란 얘기다.


 이건 일선학교의 안이함만 탓할 일은 아니다. 살아있는 교육현장에서 생동감있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야하는 교육당국의 무관심이 빚어낸 결과라고 보는게 맞다.


 교과과정에도 편성되어 있지 않는 터에 일선 교사들에게 번외 업무를 감수하라고 하기에는 무리한 측면이 있다. 수업에다 교과연구에 학생지도에 일선교사들의 부담이 적지 않은데 굳이 안해도 될 일을 알아서 하는 교사가 몇이나 있을 것이며, 설사 의지가 있다 해도 주위를 설득해가며 실행에 옮기는 것이 녹록치 않은 일일 것이다.


 이러는 사이에 우리 청소년들의 문화접촉 기회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문화는 하루 아침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어서 지금과 같이 이론 위주의 단조로운 예능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문화 예술을 마주쳤을 때 우선 피하고 싶은 마음부터 들 수 밖에 없다.


 21세기는 문화가 주도하는 시대다. 최근 몇년사이 정부 차원에서도 문화예술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 수립되었고, 울산시나 지역언론, 각 기업에서도 문화에 대해 기울이는 노력이 예전과는 다르다.


 그런데 정작 일선 학교에서 문화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고작해야 수행평가 과제로 전시회를 알아서 보고 감상후기를 제출하라는 정도다. 과제 제출기간이 임박해서야 미술관 한번 대충 둘러보고 자료집에 있는 내용을 옮겨쓰고 확인도장 받아 가는게 전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3에게 물어봐도 오페라와 뮤지컬을 구별하지 못한다. 현악 4중주에 어떤 악기가 등장하는지 입으로만 달달 외웠지 연주회 한번 본적이 없는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평생 무감각하게 예술과는 담쌓는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문화와 예술은 어려서부터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 피아노,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것은 쉽게 하면서도 연주회를 데리고 간다거나 음반이라도 사서 클래식을 들려주는 것에는 인색하다.


 이것은 지금의 부모들이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이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학교에서마저 이론 위주의 예능교육으로 일관한다면 지금의 청소년들이 부모가 되었을 때에도 똑같은 현상이 빚어질 것이다.
 문화 예술은 시혜적인 개념에서 앞으로는 산업적 경제적 가치에 비중이 실리고 있다. 문화산업은 고부가 유망산업으로 위상을 높여줄 신국가동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문화산업은 그 토양을 이루는 기초예술과 끊을 수 없는 숙명의 관계에 놓여 있다. 현대사회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또는 다른 산업과 협력하여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게 된다.


 문화는 아는만큼 보인다. 문화적 기호는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을 통해 축적된다. 학습의 요체는 문화예술의 향유이다. 공연예술을 자주 접함으로써 기호가 형성되고 축적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번거로워서…' 교육계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우리 청소년들의 문화적 소양과 예술적 감성이 죽어가고 있다. 문화예술의 가치를 보는 교육계의 시각이 바뀔 때가 됐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