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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요즈음 세상을 알려면 정치, 문화, 경제, 사회를 아우를 정도의 상식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 가운데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은행원으로서 정치 만큼은 관심을 갖고 싶지 않다. 그래도 쏟아지는 정치 뉴스는 어찌할 바를 모르게 만든다.
 정치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사람의 삶 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조화로운 관계만 유지를 한다고 하더라도 별 문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조화로운 관계란 주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좋은 이가 보내준 글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면 상대는 문을 열지 않는다. 문을 열기는 커녕 경계하는 마음이 된다. 주는 마음은 열린 마음이다. 내 것을 고집하지 않고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그의 말을 들어주고 그의 마음을 받아 주는 것, 그것이 열린 마음이다.
 무엇인가를 애써 주려고 하지 않아도 열린 마음이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냥 열린 마음으로 있어라. 가만히 있어도 열린 마음이면 그건 주는 마음이다. 나를 낮추는 것은 열린 마음의 시작이다. 나를 낮추고 또 낮춰 저 평지와 같은 마음이 되면 거기엔 더 이상 울타리가 없다. 벽도 없고 담장도 없다. 넓디 넓은 들판엔 수많은 꽃들이 다투어 피고 뭇 짐승들이 와서 머물고 머물다가는 떠난다.
 준다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줄 수 있는 마음만 있다면 요즈음의 정치, 사회, 경제의 모든 문제들은 짜증나지 않고 오히려 즐거울 것이다. 줄 것이 없어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받고자 하는데 받지 못해 고민하고 짜증내기 때문이다.
 경제는 분배에 관한 문제가 가장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분배를 누구에게 받아서 누구에게 나누어주는 문제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각자가 자신이 가진 것 조금만 나누어 주어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외신을 통해 보도되는 빌 게이츠의 기부, 웨렌 버펫의 기부 등이 우리나라 발 외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업탑 로타리를 돌다 보면 사랑의 온도계가 끝까지 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내다보니 처음 세워졌을 때는 언제 온도가 올라갈까 하였지만 어느 순간에 온도계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음을 알았을 때, 아직은 사람이 살아가기 좋은 곳이 울산이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다. 온도계에는 누구의 이름도 없다. 작은 정성이 모인 것이다. 말 그대로 조용한 기부가 행해진 것이다.
 사람에게는 손이 두개 있다. 손은 두 사람을 묶을 수도 있지만 서로를 밀어 낼 수도 있다. 손가락은 두 사람을 연결시키기도 하지만 접으면 주먹으로 변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색하게 두 손을 내린 채로 서서 서로를 붙잡지 못하고 있다. 지혜와 어리석음이 모두 손에 달려있다. 그런데 그 손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다. 준비되지 못한 내 마음 준비되지 못한 어리석은 내 손, 남에게 손가락질 할 때마다 세 개의 손가락은 항상 자기 자신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만 안다면 이 세상은 더욱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 같은 기대를 해 본다. 높은 곳이 있다는 것은 비교 상대인 낮은 곳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낮추면 상대가 높아질 수 있다. 우리네 삶이 무조건 높은 곳만 바라보지 말고 한번쯤 뒤 돌아 낮은 곳을 쳐다볼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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