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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가 병이 들어 떠나 있겠다고 해서 햇볕이 소복이 드는 고향 산자락에 묻었다. 늙은 엄마와 함께 정성스럽게 땅을 판 뒤 보물을 숨기듯 묻어두었다. 나의 개는 땅속에 묻어두어서 한 달에 두 번씩 찾아와 저를 부르는 내게 걸어 나올 수가 없다. 그렇다고 오직 나하고 함께하길 바라던 개였기에 내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 척 땅속에 있을 수도 없다. 의지가 강하고 고집이 센 나의 개는 어떨 땐 하얀 아카시 꽃으로 왔다가, 넌출넌출 호랑나비로 왔다가, 붉은 칡꽃으로 공중에 그네를 타기도 했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의 손을 빌어 살풋살풋 향기로 인사하고, 작은 날개를 팔락이며 내 머리 위를 돌아 방긋 웃게 했다. 칡꽃 그네는 또 어땠나. 다리 긴 거미가 둘이 함께 다정해라고 자리를 내어주고 멀찍이 잎사귀 뒤에서 기다려주었었다.


오늘은 하던 일이 늦게 끝나서 깊은 밤에 들렀다. 캄캄한 밤에는 어떻게 저를 보여 주려나 사뭇 설빀다. 차에서 내려 "복아, 엄마 왔어. 자니?" 낮게 불렀지만 고요했다. 풀벌레 없는 차디찬 겨울밤이라 들리는 소리도 없었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 탄성을 질렀다. 운전하느라 켠 헤드라이트 때문에 잊고 있었던 게 있었다. 보름달이 뜬 겨울밤. 찬물에 막 세수하고 나온 것 같은 보름달이 높이 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보름달로 왔구나. 변신하는 재주가 나날이 발전하여 이젠 밤하늘에 환한 보름달로도 뜨는구나. 나의 개가 살아있을 때 오래오래 눈을 들여다보았던 것처럼 보름달을 우러러 올려다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존 쇤헤르 그림·제인 욜런의 '부엉이와 보름달'을 떠올렸다. 산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눈 내린 산골의 달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내가 어린 날의 사진첩처럼 아끼는 그림책이다. 위의 오빠들이 아버지를 따라 달밤에 부엉이를 보고 온 뒤에 전하던 경이와 감동이 부러웠던 여동생은 드디어 부엉이를 보러 갈 수 있는 나이가 된다. 하얀 눈을 밟으며 아빠와 숲속으로 부엉이를 만나러 가는 설렘은 추위도 무서움도 다 참을 수 있게 한다.

 

조희양 아동문학가
조희양 아동문학가

겨울밤, 숲속에 사는 부엉이를 만나기 위해 아이는 자연에 순응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 과정이 한편의 시처럼 고요하면서도 아름답다. 책을 읽는 사람까지도 숨죽이게 하는 긴장감이 설렘과 직조되어 가볍게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다. 소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침묵하는 법과 용기내는 법을 익히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빠와 여자아이가 낸 눈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알게 된다. 눈 내린 하얀 숲속, 아빠와 부엉이가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 이 아름다운 시간을 위해 높이 떠 숲속을 밝히는 보름달.
밤늦게 숲으로 나의 그리운 개를 만나러 갈 줄 몰랐고, 아끼는 그림책을 보면서 나의 떠난 개를 떠올릴 줄 몰랐다. 그런데 언제나 헤어지기 싫어하던 녀석은 내가 소개할 그림책에 보름달로 쏙 들어와 나를 기쁘게 슬프게 한다. 이렇게 겨울밤은 죽은 개도 불러낼 만큼 길고 시리다.
 조희양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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