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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전쟁

김명숙

겨울 외풍 시린 날
마침표로 停戰에 합의했다

함께 동구 밖 나섰던 아홉의 친구들
지리산 깊은 골에 순한 눈 하나 묻었다
날 옥수수 씹으며 낙동강 지나 압록강에 다다랐을 땐 혼자가 되었다
덜렁 떨어져나온 팔을 잡기도 하고
허공으로 날리는 산도화가 되고 직선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졸음과 허기의 압록강엔 고향의 복숭아꽃 살구꽃 떠내려가고 있었다

혼자 대문을 넘던 그 발걸음부터 전쟁은 다시 시작이었다
막걸리 사발은 당신의 겨드랑이에 날개 접어 내려 앉고
논문서 밭문서는 화투장으로 변해갔다
나그네 설움 가락에는 어깨에 박힌 파편이 서럽게 흘렀고
세상은 온통 마구잡이로 쏘아댄 총에 쓰러진 四肢들이었다

친구들 하나씩 돌아와 가슴에 자리 잡았다
굳어지며 파먹으며 腸器에 온 친구들과 반갑게 해후했다
통곡소리 새벽을 깨우고 채 떠나지 않은 영혼 붙잡으려 팔을 휘둘렀다

치러낸 전쟁 놓치기 싫어 끝까지 눈뜬 채.

● 김명숙 시인- 부산에서 출생. 2004년 순수문학지 '좋은문학'으로 등단. 고교 국어 교사(전). 울산문인협회 회원.

 

최종두 시인
최종두 시인

김명숙 시인의 시에 특징을 들라면 소재 선택이 될 것이다. 위의 "당신의 전쟁"도 시의 소재라기보다 산문으로 소화할 긴 스토리가 있을 뿐 아니라 단편 소설로 다루어야할 이야기다. 그러나 시인은 이를 시에서 소중한 압축을 통해서 무리 없이 능란한 재능을 보이고 있다. 시를 오래 써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극히 어려운 일을 시인은 무난히 소화시키고 있다. 그런 생각으로 다른 작품을 눈여겨보고는 무릎을 칠 만큼 또 다른 장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한결같이 작품에 연계하고 있는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었다. 친정부모와 시부모를 끔찍이 섬기면서 살아온 과거가 그대로 녹아있음을 보게 되었다.
바로 그것이 갸륵한 심성으로 꽃 피워서 대도시의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다년간 봉직하고 나서 가정을 지키며 문맹자를 위한 봉사활동에 뛰어들게 되었을 터이다.
시의 텃밭은 아무래도 진실로 아름다운 마음에 있다고 한다면 김명숙 시인은 오래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최종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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