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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들어가서 제일 신났던 것은 소위 19금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내가 다닌 대학교가 당시 서울 종로 한복판에 있어서 학교를 가려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허리우드극장 밑을 지나가야만 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피카디리극장, 스카라극장이 보이고, 거기서 조금 더 걸어가면 대한극장, 명보극장이 나온다. 이 중에 지금은 사라진 극장도 많다.

주변 상황이 이러고 보니 영화에 대한 유혹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특히 아침 일찍 시작하는 조조영화는 할인이 되어 영화관을 지날 때마다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래서 1980년대에 나온 영화는 아침 일찍 모조리 거의 다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당시 본 영화로 <겨울여자>는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고, 주인공 '이화'는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은 내 안의 '이화'를 떠나보내는 날이다.
나는 <겨울여자>를 영화로 먼저 접했다. 그러고 나서 소설을 사서 읽었다. 지난주에는 약 30여년 만에 조해일의 장편소설 <겨울여자>(1975)를 다시 읽어보았다. 정말 술술 잘도 읽혔다. 대중소설 지니는 강점일 게다.

<겨울여자>에서 '여자'가 주는 느낌은 그냥 '남자'가 주는 느낌하고 상당히 다를 것이다. 젠더 표현 연구에서도 '여자'라는 표현이 '남자'라는 표현과 비교해서 분명한 것은 부정적인 의미가 포함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부정적인 의미라는 것은 성(性)적인 의미로 즉, '여자'를 성적 대상물로 본다는 의미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우리 인간사회에서는 남자=인간, 여자≠인간이라는 도식이 생겨난 것이다.

<겨울여자>의 '이화'도 마찬가지이다. 이화는 남성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그런 여성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화'는 그 전에 그려진 여자주인공들하고는 그 양상이 조금 다르다. 그래서 1970년대 대중소설의 여자주인공 인물 표상에 있어서 <겨울여자>가 차지하는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 이화는 대학생이 되어 자신에게 1년 동안 연애편지를 보낸 요섭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어느 날 떠난 여행에서 요섭은 이화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려고 하나 이화는 강하게 거부하고 헤어진다. 상처를 받은 요섭은 자살을 하고, 요섭의 자살에 충격을 받은 이화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고, 급기야 자신을 원하는 남자에게는 자신의 몸을 허락하겠다는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대학교 교내 신문 기자인 석기를 만나 연애를 하게 된다. 이화는 요섭의 기억에서 벗어나 겨우 이제야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가 싶었더니, 군대에 입대한 석기가 사고로 죽게 된다. 완전히 실의에 빠진 채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이화는 여러 남자를 만나 그들의 상처와 슬픔을 육체를 통해서 치유해 준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빈민촌에서 빈민층을 위해 일하는 광준 이라는 남자를 만나 함께 일하기로 결심을 하는 데에서 소설은 막이 내린다.

처음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었을 때는 어떻게 이화 같은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하고 몇 날 며칠을 고민했었다. 우선 이화를 대학생으로 설정한 것도 파격적이다. 1970년대만 해도 여자가 대학교를 간다고 하는 것이 지금처럼 보편화된 시대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당시 여대생은 엘리트층이다. 이러한 엘리트 여대생에게 순결은 거추장스러운 이데올로기라는 이야기를 심은 것이다. 이것 역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생각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1970년대의 대중소설의 여성 캐릭터는 아마도 최인호의 장편소설 <별들의 고향>이 대표적일 것이다. 남성들의 성적 욕구에 처절하게 망가져 가는 여주인공 경아의 삶에 비하면 <겨울여자>의 이화는 상당히 주체적으로 삶을 이끌어 간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한국 사회가 만들어내는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인 사회의 범주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1970년대에 만들어낸 여성 이화와, 그를 상대로 한 요섭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남성들이 나이를 먹어 지금 2010년대에 살고 있다고 가정하면 어떨까.

최근 유난히도 많이 드러나는 대학 교수들의 성추행사건들을 접하면서 그들의 DNA에 <겨울여자>가 만들어낸 '이화'를 동경하는 마음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해 본다. 아직도 여자의 성(性)을 도구로 생각하고 여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가 만연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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