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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분이 문화수상자로 선정되었기에 축하를 드리러 가는 날이다. 마치 내가 상을 받는 것처럼 들뜬 마음으로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가로수의 잎들도 그들을 축하하고 싶은지 팔랑팔랑 기립박수를 보내는 듯하다.

시상식 장소가 문학인들이나 예술인들이 흔히 드나드는 곳이 아니었다. 어느 회사에서 한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의아했지만, 골똘히 생각해보니 생소한 자리에 내심 마음이 더 끌렸다. 그 회사는 울산 석유공단으로 향하는 초입에 자리하고 있었다. 

드디어 문화상을 제정한 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수를 바라보는 연세였지만 아담한 키에 지팡이를 짚으셨다.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체구는 깡마른 수숫대처럼 보였으나 목소리만은 큰 강당을 울렸다. 그분은 시기적으로 어려울 때 태어나서 힘들게 살아왔다고 하셨다. 그래서 자신을 돌아보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한두 명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그마치 일 년에 85명이라는 학생에게 주었다. 십 년 동안에 850명에게 준 것이다. 되짚어보면 책과 씨름하다 나른한 봄날 나태해지기 쉬운 청소년들이 아니겠는가. 장학금을 계기로 학생에게 얼마나 자신감을 주겠는가. 아마 어지러운 머리를 털고 다시 도전하는 자세를 가지리라.

그뿐만이 아니다. 형편이 어려운 여러 명의 예술인에게도 거금의 창작지원금을 주었다. 경제적 도움에 목말라 하는 문학인에겐 가뭄에 단비와 같은 약물이 아니겠는가.

그분은 축사에서 어렵던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 전쟁을 겪어서도 꿈을 버리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처음에는 가스통을 자전거로 그다음엔 손수레로 한 사업이, 지금은 전국 각지에 10개의 큰 회사를 두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고초가 왜 없었겠는가. 이런저런 극난을 뛰어넘었기에 크게 성장할 수 있지 않았으랴.

장학금을 받은 학생에게는 장학금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당부했다. 장학금을 받아 가는데 그치지 말고 자신의 근성을 닮으라고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용기와 패기를 지니라고 했다. 본인의 호가 춘포이라며, 춘포의 혼을 받으라고 하셨다. 자신의 끈질긴 혼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겠다는 그 대목에서 나는 다물었던 입이 벌어지면서 귓전에서 경쇠 치는 소리가 났다. 순간 목이 꽉 막혀오면서 머릿속이 띵해지고 말았다.

십 년이 되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원하였다. 아무 관련이 없는 이들에게 공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마음이 바로 대자비가 아닐까 싶다. 춘포, 이 분이야말로 세월의 묵정밭을 갈아 씨를 뿌리는 대농의 농사꾼이 아닐까. 베풀어도 소란하지 않고 남을 도와도 생색내지 않은 미덕. 그래서 더 위대해 보인다. 숨은 애국자라고 칭하고 싶다. 그분의 모습에서 내 마음은 동쪽 하늘의 푸른빛처럼 맑아지기도 하고 온 주위가 환해짐을 느낀다.

누구나 말은 쉽다. 진정으로 베풀기란 어렵다. 탐욕은 카트라인이 없기 때문에, 물질을 손에 넣어도 조건 없이 베풀기란 고양이가 생선을 눈앞에 두고 먹지 않는 것보다 더 어렵다. 대다수 사람은 자기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이에게 베풀기보다는,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이에게 굽실거리게 된다. 하지만 춘포문화상은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주는 것이고 보면, 그의 깊은 내면을 읽을 수 있다. 

헛개 나무에서 구린내가 나고, 소나무에서 솔 향이 나듯이, 나는 오늘 춘포 문화상에서 향긋한 향기를 느낀다. 습기 없는 바람이 불어 나뭇잎마저 바싹하게 말라가게 하는 이맘때 단비 같은 촉촉함, 코끝을 스치는 알싸한 향기를 맡는다.
시상식을 마치고 나오니 짧은 초겨울의 해가 어느새 저물었다. 가로수에 앉은 새들도 춘포의 근성을 배우려고 왔던가. 흥겹게 지저귀며 저무는 하늘가로 날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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