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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주 상안중학교 학부모
이선주 상안중학교 학부모

시끌벅적한 교실 구석에서 아빠 키를 훌쩍 넘긴 아이들이 한 아이를 둘러서 있다. 수업을 위해 교실에 들어선 선생님을 보자 다급한 아이들은 얼른 자리에 앉는다. 찰나에 벌어진 일이지만 교사라면 이 일을 마음에 담아둘 것이다. 그리고 '시그널'임을 알아챌 것이다.

모든 일에는 신호가 있다. 아침 해는 새벽의 여명을 지나야 볼 수 있고 비구름이 몰려오면 비나 눈이 올 것을 미리 예측한다. 아이들의 행동에도 신호가 있다. 따라서 예민한 신호 감지기를 갖고 있어야 그 행동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학교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진다.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면 집은 잠시 스쳐가는 곳이 된다. 학교는 가장 활발한 상호작용의 공간 중 하나이며 그 곳에서 친구들과 선생님과 온 종일 생활하게 된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학교에서 다양한 일들이 발생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을 위한 또 다른 과정으로 바라보면 학교 속 다양함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근래에 학교에서 발생하는 일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일들이 간혹 있다. 바로 학교폭력 사건들을 접하게 되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부모는 아이들이 학교를 가는 뒷모습을 보고나면 고등학생의 경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6시간이 지나야 아이 얼굴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일상이 연속되니 집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알 수 없다. 특히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걱정이 항상 된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관심과 노력으로 무사히 하루를 마치고 집에 오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 안심은 되지만 학교와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나보다 더 많이 알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깃드는 서운함도 어쩔 수 없다.

예전의 내 부모는 선생님을 뵐 일이 있으면 항상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께 아이를 맡길 테니 선생님이 알아서 하세요."
지금의 선생님은 예전처럼 알아서 할 수 없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선생님이 먼저 조치를 취하고 학생들을 지도해 문제의 근원을 찾아내서 재발을 막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의 공식적 기구로 학교마다 학교폭력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학교폭력위원회의 목적은 폭력에 관련된 학생들을 처벌하고 구호조치를 취하는 게 우선이지만 실질적 목표는 학교폭력의 근원을 밝혀서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다. 학교폭력은 반드시 학교폭력위원회를 통해 처리되어야 된다.

여기서 학교폭력의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은 언제나 자리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청소년은 환경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시기이며 특히 가정과 학교, 친구들의 영향력이 제일 크다. 학교폭력 발생 시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은 소홀히 한 채 처벌이 이뤄지면 학교폭력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는 내가 학교폭력위원회에 함께 한 경험을 보더라도 어제의 피해학생이 내일은 가해학생으로 마주 않은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항상 그들만의 신호를 보낸다. 어른들이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울산광역시교육청은 지난 9월 18일부터 10월 27일까지 초 4학년부터 고 2학년까지 실시한 '2017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울산의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2014년 1.2%이던 것이 2017년은 0.6%로 절반으로 줄었다.

이 결과를 보면 4년 전 보낸 신호가 배달사고 없이 지금까지 유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사다난했던 2017년을 잘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년엔 아이들이 무슨 신호를 보내올지 그려보고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12월의 끝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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