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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청 울산보훈지청 보훈섬김이
김명청
울산보훈지청 보훈섬김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따가운 칼바람이 어르신들의 외로움처럼 마음을 찌르는 겨울입니다. 젊은 시절 누렇게 익어가던 들녘은 이제 아파트와 빌딩 숲으로 변했고, 한적한 모퉁이에는 어르신들이 계십니다. 홀로 병든 몸을 추스르고, 보훈 섬김이의 노크소리를 참으로 반갑게 맞아 줍니다.

어르신들은 한껏 미소 띤 얼굴로 옛 시절 이야기를 합니다. 기억은 오래돼 무뎌졌지만, 6·25 전쟁의 생생함은 여전히 가슴속에서 변함이 없고 고생한 그때의 일들은 잊혀지지 않는가 봅니다.

그 시절을 건너, 이제는 늙고 병들었지만 보훈연금과 보훈섬김이가 있어 참 감사하고 위로받는다 합니다. 그렇게 살아내신 삶들을 받아내며 어르신들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는 섬김이가 되려 마음을 내내 다잡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가슴 철렁한 일도 있습니다. 홀로 길거리를 나선 어르신께서 너무도 변해버린 거리에 길을 잃고 떨리는 목소리로 제게 전화를 거셨습니다. 무사히 집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 가족이 아님에도 저에게 의지해주시는 마음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어르신들은 혼자 계시기 위험한 상황이 많습니다. 한 밤중에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가실 수도 있으며, 발을 헛디뎌 꼼짝 못하고 홀로 눈물을 삼키시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 수 없다면 얼마나 슬플까요. 너무도 열심히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노후 안전과 행복을 위해 섬김이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어르신들은 참 정도 많고 사랑도 많습니다. 때론 귀엽기까지 합니다. 적적해하셔 동영상으로 노래를 틀어드리자 얼굴의 주름살을 출렁이며 신명나게 곡조를 뽑아냅니다. 구구단도 군가처럼 씩씩하게 불러봅니다. 산책을 함께 할 때면 사는 게 즐겁지 않다 투덜대시면서도 잠깐잠깐 얼굴에 아이같은 웃음기를 비춥니다. 그런 얼굴을 볼 때면 참 감사합니다.

섬김이가 된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어르신들과의 추억이 속속 떠오릅니다. 혼자 밥먹는 게 미안하다며 눈물 지으시던 모습, 오는 길에 손주 심부름 시키듯 우유를 부탁하시는 할머니. 하지만 이제 정말 저를 가족으로 생각하시는지 너무 자주 부탁하시기도 합니다.

때론 힘들지만 그래도 섬김이를 기다리심에 감사합니다. 섬김이 오는 시간이 되면, 대문 앞 햇볕 드는 담벼락에서 담배 한 개비 물고 기다리고 앉아계십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 할아버지의 주름진 이마가 환하게 펴집니다. 매일 찾아뵙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켜켜이 쌓입니다.

처음에는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에 무슨 일 있나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번 더 두드리자 문이 열립니다. "놀랬잖아요" "죽어서까. 괜찮다 이제 죽을때도 됐지"  농담 섞인 변명을 하지만 이제는 아예 문도 잠그지 않고 기다리십니다.

어르신들에게는 외로움과 무료함이 전쟁과 같은 고통입니다. 구순의 어르신들은 전쟁에서 돌아온 기억을 떠올리며, 정한수 떠 놓고 자식의 무사귀환을 바라던 어머니 덕이라 하시며 가족을 그리워합니다.

이제는 보훈 섬김이로서 어르신들의 여생이 외롭지 않게 잘 보살펴드리고 싶습니다. 어르신들의 삶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하고 또 노력하렵니다. 어르신들의  섬김이로서 어르신이 필요로 하는 것에 더욱 귀 기울이고, 자긍심을 느끼도록 하겠습니다.

오백원짜리 붕어빵 하나에 "맛있다"하시며 환히 웃는 모습이 또 그리워집니다. 어르신들 마음에 찬바람이 가시고 따뜻한 봄이 올 때까지, 어르신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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