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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 라는 말에는 뭉클함이 녹아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늘 무언가와 헤어질 때는 뒤를 한번 돌아보게 되는 아쉬움과 섭섭함이 찾아온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런 순간이 왔다. 헤어질 시간이다.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 '아~' 눈을 감고 가슴이 콩닥거린다. 너무나 좋다. 2017년 올해 나의 마지막 노래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ff 1873-1943'의 교향곡 2번 중 3악장 'Symphony No.2 op.27 mov.3'이다.


이곡은 그가 러시아를 떠나 독일 드레스덴에 3년간 머무를 때 작곡된 곡이다. 1905년 제1차 러시아 혁명 직후 귀족이자 지주였던 라흐마니노프는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러시아를 떠나게 되는데 불안했던 국내 상황을 잠깐 피해서 이주하였던 것도 맞지만 그 당시 너무나 연주활동으로 바빴던 그에게 작곡할 시간을 스스로 만들기 위함도 있었다. 유튜브에서 이곡의 제목을 쳐보면 여러 가지 동영상 중 하나가 눈에 띄는데 라흐마니노프와 그의 가족들이 함께 나오는 흑백영상과 함께 이곡이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그의 음악과 사진으로부터 얻어낸 내가 만든 그의 모습은 어둡고 우울하고 심각한 그런류의 단어들만 머릿속 한 가득 떠올랐는데 이 흑백영상을 보고 난 이후 내가 만든 그의 모습은 달라졌다. 그리고나서 다시 그의 사진을 보니 얼굴에 옅은 미소마저 보인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그의 눈빛 속에 담긴 애정과 사랑을 보고나니 그의 음악마저 달리 들렸다. 더욱더 그의 음악이 좋아졌다.

그렇게 가족과 함께 드레스덴에서 머물며  작곡에 전념했던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2번과 다른 작품들도 완성해 낸다. 작곡가 이전에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는 그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유명세를 떨치게 되는데 그런 도중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해 그곳으로 옮겨 간 이후 그는 소수의 곡만 작곡하고 성공한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살다가 미국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는 1897년 교향곡 1번의 실패로 심한 자괴감과 우울감으로 큰 슬럼프를 겪어 3년 넘는 시간동안 작곡을 전혀 할 수 없었던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 시간을 이겨내고 발표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그의 대표작이란 할 수 있는데 그 이후 발표한 교향곡 2번 또한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그의 음악의 정점을 표현한 곡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만 이후 정치적인 이유와 정세의 변화로 이곡은 그리 오래 동안 연주되지 못하고 잊혀 지게 된다. 하지만 1973년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과 런던 심포니의 연주로 다시 세상에 나와 재평가 받게 되며 다시 사랑받게 된다.   


12월 이곡을 들으면 나의 2017년이 찰나로 스쳐간다. 곡의 중간 즈음에 조금씩 노래가 진행되면서 고조되어  최고의 절정으로 음악이 치닫는 부분이 있는데 가슴이 조여 오는 듯 먹먹해 지다 한순간 숨을 후 하고 내뱉게 만든다. 그야말로 풀릴 듯 풀리지 않고 더 꼬여져만 갔던 나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행복했던 순간들도 모든 게 떠올랐다.
2017년도 이렇게 끝나간다. 한해를 돌아보며 내가 잘했던 순간도 내가 잘못했던 순간도 모두 다 나의 시간들이였던 것을….

나를 돌아보게 된다. 무언가를 잘해 보려 애쓰고 노력했던 나에게 고생했다고, 노력해도 잘 풀리지 않던 일들에 대해 걱정하고 애 태웠던 나에게 미안했고 그래도 잘 이겨내고 견디며 올해를 잘 살아 준 나에게 대견하다고 내가 나에게 말 해 주니 이게 뭐라고 눈물까지 핑 돌며 위안이 된다. 그러면서 또다시 주저리주저리 나만의 기도를 되새기게 되는 거 보니 아쉬운 일들만 잔뜩 떠올랐나 보다. '주여, 내가 받은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고 ,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용서 할 수 있게 하시고, 나도 모르게 나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나를 대신해 그들 곁에서 위로하여 주소서'

올 한해도 매 순간 고마웠고 즐거웠다. 안녕, 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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