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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언 울산문화재단 대표이사
박상언
울산문화재단 대표이사

최근 몇 해 사이 생활문화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뜨겁다. 2014년 제정·시행된 지역문화진흥법은 '지역의 생활문화진흥'을 별도의 장으로 두었고, 생활문화진흥원이 지난해 문을 열었다. 이번 정부의 100대 과제 중 하나도 '지역과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 시대'다. 생각건대 생활문화란 우리 생활의 대부분이 문화라는 점에서 별 게 아닐 텐데, 바야흐로 문화정책의 총아가 된 것은 왜일까?

알다시피 '모두에 의한 문화'를 지향하는 '문화 민주주의'의 시대정신 때문이다. 1990년 출범한 문화부에도 생활문화과 등 4개 과를 둔 생활문화국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의 생활문화정책은 요즘과는 결이 많이 달랐다.

'모든 국민에게 문화를'을 모토로 한 문화발전10개년계획(1990~1999)에 따라 문화 향수권과 참여권의 신장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천하였다. 문화의 접근성을 높이는 '문화의 민주화' 전략이었던 것이며, 이때 처음 시행한 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대표적인 정책이 '사랑티켓' 제도다.

울산문화재단도 올해 생활문화정책의 문을 열었으니, 국비 공모로 추진한 문화이모작사업이 그것이다.
농·산·어촌과 문화 소외 지역의 마을이 스스로 문화적 역량과 자생력을 높일 수 있도록 마을문화리더를 양성하는 사업이다. 전국 4개 권역 중 경상권 주관기관으로 울산문화재단이 선정된 것이다. 내년에는 국비 지원 여부와 관계없이 울산시의 지원만으로 생활문화활성화기반조성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올해의 문화이모작사업과는 별개다.

지역문화진흥법은 생활문화를 '지역의 주민이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자발적이거나 일상적으로 참여하여 행하는 유형·무형의 문화적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생활문화 고유의 특성과 지향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즉 주민성, 자발성, 일상성과 함께, 어구의 겉으로는 직접 드러나지 않지만 주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예술성이다. 이들 넷은 생활문화의 필수 요소이므로 그 정책 추진의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민성이란 일정한 지역에 살고 있는 일원으로서의 공동체적 삶에 대한 의식과 이로부터 갖게 되는 사회적 태도를 뜻하며, 자발성이란 자기 안의 원인과 힘에 따라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스스로를 활동하게 함을 이른다. 일상성은 날마다 반복·지속되는 성질로서 주민들이 직접 영위하는 생활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말하며, 예술성이란 생활과 생활문화의 주체인 주민들의 창조적 삶을 위한 미학적 기준과 그 방향을 의미한다.

이들 넷은 생활문화가 서로에게 권할 만한 아주 좋은 재화 즉 가치재를 넘어 우리 모두가 숭상하고 반드시 함께 나눠 가져야 할 공공재로서의 완전한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생활문화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점점 더 파편화·탈정치화하는 현대사회에 적극 대응하는 주체적인 생활양식이 되고 있다.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통합을 함께 모색하는 사회적 기제로서의 생활문화의 의의는 날로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생활문화정책을 추진할 때는 주의할 점이 많다. 혹여 주민들의 문화예술 동아리 활동에 대한 개별 지원에만 머문다면 생활문화의 특성과 가치에 대한 몰이해로 인한 반쪽짜리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을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동아리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 공급자의 편의적 발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문화정책은 전통적 의미의 문화생활에 띄엄띄엄 참여하거나 아예 못 하는 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함과 함께 네트워크와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주목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가 생활문화를 이끌어간다는 수직적 거번먼트 관점을 버리고 판을 열어주는 매개자로서의 수평적 거버넌스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정부의 보조금도 생활문화 활동을 위한 의존적 수단이 아니라 자생력을 끌어올리는 마중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나아가 생활문화정책 자체가 주민 생활문화 현장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예술가의 창조성과 그 역량을 생활문화와 어떻게 결합할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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