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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부터 새해에 접어든 지 닷새째인 오늘까지도 사방에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가 날아든다. 나도 얼른 '새해 복 받으세요'라는 답장을 보내야 하는데 그 말이 쉬이 나오지 않는다. 어느 곳에도 복을 저축해 둔 적 없는 내가 누구더러 복을 가지라기엔 염치가 없다. 어디엔가 쟁여 둔 복이라도 있으면 두루 나누면 좋으련만. 

새해 복을 받으라고는 하나 어느 집 누구한테 받으라는 구체적 명시가 없으니 혼자 반성하고 깨우칠 뿐이다. 복을 지은 적 없어서 '새해에는 예쁜 복 지어 많은 복 거두시길 기원합니다'라고 써 놓고도 민망해서 어물쩍 꼬랑지를 빼고는 내심 나의 진심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런 내게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받은 복이 있을 테니 찾아보라고 한다면 남편의 정년퇴직이 아닐까 한다.

2018년 무대 막이 오른 지 닷새째다. 인생이란 무대는 스스로 무대 막을 여닫을 수 없이 오직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장치로 설정돼 있다. 제 마음대로 올리고 내릴 수 없는 게 인생 무대다. 올해부터 우리 부부의 인생 3막 커튼이 올랐다. 

태어나니 인생 1막 위에 서 있었고 딱히 계획하지 않았어도 자의 반 타의 반 남편을 만나 인생 2막에 올라서 온 힘을 소진했다. 이제는 1, 2막과 달리 남편의 퇴직과 동시에 예견돼 있었던 인생 3막에 오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답게' 살아야지 싶다. 사는 것 답게, 인생 3 막 답게. 이 끝 또한 직접 매듭지을 수는 없지만, 여태와는 다르게 더 가치 있는 시간으로 펼쳐 이 삶의 끝까지 무난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남편의 정년 퇴임식 날, 후임 동료는 나 들으란 듯, 마주 앉은 그의 아내에게 들으란 듯 배우자가 돈 백 정도만 벌어오면 자신이 집안일도 해보고 살림을 도맡아 살아봤으면 좋겠다 했다. 왜 이렇게 귀가가 늦으냐고 잔소리를 하며 타박도 해보고 싶다 했다. 농으로 한 소리였겠지만 그의 답답함과 무게감이 느껴졌다. 평생을 가장이라는 무겁디무거운 짐을 지고 어깨가 내려앉고 무릎이 부어오르도록 힘주어 버티다가 다시 일어섰어야 했으리라.

한국의 가장들에게 '근속정년'이란 제도마저 없다면 나이가 찼다고 과연 몇 명이나 안정된 직장에서 보란 듯 뒤돌아 손을 흔들며 나올 수 있을까. 직장에 다시 붙박여야 하는 자신이나 가족의 바람 또한 고정적인 수입에 대한 미련을 쉬이 버리지 못할 터다. 
정년퇴직은 남편이 청춘을 다 바쳐 일한 대가의 큰 선물이다. 빛나는 선물이 되도록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남편을 바라본다. 동면하는 곰처럼 웅크리고 밀린 잠을 자는 남편의 등선 위로 굴곡 많던 지난 세월이 오버랩 되어 애잔하다.

인생 3막의 새 무대는 남편이 주인공이다. 나는 곁에서 주인공을 빛나게 하는 조연으로 몸을 낮추어 성공적인 공연을 마치고 함께 박수 받을 욕심을 내 본다. 그와 둘이서 복 짓는 일로 인생 3막의 삶의 가치를 찾아볼 참이다.
밥을 짓고 옷을 짓듯 복도 짓는 것으로 생각한다. 밥을 지어 식솔의 입안을 가득 채우는 복을 내가 느끼고 옷을 지어 수신하는 복 또한 내가 즐겼다. 이제 인생의 마지막 무대인 3막을 위해 넓은 품으로 다시 시작이다.

Give and Take!. 세상의 냉철한 이치는 공짜가 없다. 이제 그가 즐거움을 아는 삶을 살도록 도와야 하는 게 나의 의무다. 퇴직한 남편을 고립시킨다는 이 시대의 통념적인 말들은 굳이 섞고 싶지 않다. 이제 짜인 각본도 리허설도 없는 인생 3막 공연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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