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
겉모습
  • 울산신문
  • 승인 2018.01.11 2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숙자 수필가

동짓날이다. 불교에서는 작은설이라 하여 새해 맞이하는 날이기도 하다. 올해도 동지를 절에서 보내기로 마음먹고 길을 나선다. 
내가 다니는 절은 '참 나를 찾는 절'이라 하여 도량이 넓고 신도들이 꽤 많은 편이다. 근래 연로하신 큰스님이 편찮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궁금한 것이 많다. 종무소에서 바쁜 보살을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을 때다. 뒤에 서 있던 낯선 스님 한 분이 대답을 대신한다. 처음 뵙는 스님이라 더 묻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고 종무소를 벗어난다. 

참모습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일침을 가하는,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는 듯한 설법


법당 안에는 많은 사람이 기도에 동참하고 있다. 간신히 자리를 비집고 앉아 큰스님을 살펴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떠나버린 것일까. 이대로 영영 뵙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머리를 스친다. 그런 사이에 아까 종무소에서 뵈었던 스님께서 법상에 올라앉는다. 큰스님이었던 노스님을 대신해서 새로 오신 주지스님인 모양인데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옷은 새 옷이 좋고 임은 옛 임이 좋다더니, 저 자리에 앉아서 설법하던 노스님 생각이 간절하다. 때로는 무슨 말씀을 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고 졸음이 와도 노스님만 한 인물은 없구나 싶다. 그렇다고 노스님과 특별한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마음속에는 크게 자리하고 있었나 보다. 연륜에서 오는 묵직함 때문인지 신도들을 편안하게 해준 것도 사실이다. 누구와 누구를 비교하면 안 되지만 노스님에 비하면 새로 오신 주지스님은 그야말로 청춘이다. 하여 많은 신도에게 존경받기에는 너무 젊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낯가림이 심한 나는 설법이 시작되기도 전에 스멀스멀 잡생각에 빠진다. 그동안 한 번도 설법시간에 법당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앉은 자리가 답답하다. 들어올 때 얼핏 종무소 앞에는 새 달력을 받아가려는 사람들로 줄을 잇고 있었다. 이참에 나가서 달력이나 받을까, 아님 공양 간으로 가서 팥죽부터 먹을까 하는 갈등이 생긴다. 

생각은 그래도 밖으로 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신도들이 빼곡히 비집고 앉아 있어 출입구까지 나가는 것도 여간 민폐가 아닐 것 같다. 그 순간, 주지스님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울린다. "나를 처음 보는 사람이 많지요." 하는데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크고 부드러운지 죽비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한 방에 주눅이 들어버린 나는 속으로 '아까는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하며 앉은 자리에서 합장하고 예를 올린다. 겉모습만으로 승복을 입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출내기로 착각하고 있었으니 얕은 내 안목과 짧은 소견이 저지른 실수다.

시원한 음성에 위트와 재치가 넘치는 설법이 이어지자 팥죽 생각은 까맣게 달아난다. 내 속을 꿰뚫기라도 한 듯 여러 가지 설법 가운데 오늘은 겉모습이 험상궂은 달마대사에 관한 말씀이 이어진다. 종무소에서 뒷일을 거들어주는 직책 낮은 스님으로 치부한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시작한 설법 같다. 무지한 나의 안목을 밟혀주려는 듯 달마도의 유래에 대해서도 찬찬하게 설명한다. 우리 집 거실에도 달마도를 걸어 두고 있었기에 귀가 더 솔깃하다. 

주지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달마대사는 인물이 출중하고 기골이 장대하였다 한다. 대사는 참선 도중 길을 가다 어마어마한 구렁이가 마을 입구에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불편해하는 마을 사람들을 두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구렁이를 치우기로 마음먹었다. 유체이탈을 한 달마대사의 영혼이 섞어가는 구렁이 몸속으로 들어가서 바다에 버리고 돌아왔다. 천신만고 끝에 제자리로 와서 보니 자신이 벗어 놓은 몸은 도적이 차지해 가고 없고 온갖 나쁜 짓을 일삼다 간 산적의 험상궂은 시체만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잘 생긴 자신의 몸은 도적에게 보시하고 산적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된 달마대사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달마도란다. 눈썹이 없고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달마의 겉모습을 보게 되면 나쁜 귀신들은 죄다 도망을 가고, 마음을 볼 줄 아는 좋은 귀신은 찾아온다고 했다. 겉모습은 산적이지만, 마음은 달마의 마음이라 하여 '달마도'에 마음 심(心)자가 쓰이게 된 것도 그런 연유라는 말씀을 남기고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동안 의미도 모르고 달마도를 걸어 두었던 무지함이 들통 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 나이가 되도록 겉모습에 가려진 참모습을 구별 못 하는 어리석음에 일침을 가해주신 주지스님께 합장의 예를 올린다. 주지스님에게서 노스님의 모습이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