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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산하

박목월


仙挑山(선도산)
水晶(수정)그늘
어려 보랏빛
淸酒(청주)냄새
바람을
우는 여울을

酒幕(주막)집
뒤뜰에
산그늘이 앉는다.

▲ 박목월(朴木月): 1916년 ~ 1978년. 본명은 박영종(朴泳鍾). 1933년 어린이지에 동시 '통딱딱 통딱딱'이 특선당선. 1939년 본격적으로 문단에 데뷔. 1946년 조지훈, 박두진 등과 청록파(靑鹿派)를 결성하고 청록집(靑鹿集)이라는 시집 발간.
 

박성규 시인
박성규 시인

야생화 답사를 가자고 해서 난생 처음으로 길을 나섰다. 약속장소에 나가니 모인 사람들은 이미 수십 년 동안 답사를 해온 전문가들 아닌가. 그 분들의 열정과 끈기는 이미 야생화를 닮아 있었다.
겨울 가뭄이 극심한 영남지방은 특히 건조하여 산에 가는 것이 꺼림칙하긴 했지만 아침에 내린 눈이 갈 길을 재촉하고 말았다.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따라나섰지만 아는 것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침묵 일변도였지만 태어나 자라면서 매일 바라보고 지냈던 선도산에 오르기는 처음인지라 마음이 설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선도산(仙桃山)은 경주시의 바로 서쪽에 자리 잡은 약 390m의 낮은 산이다. 산 정상에는 신라인에게 있어서 서방정토로 여겼는지 아미타 삼존불이 있고, 산기슭에는 영경사지(永敬寺址), 애공사지(哀公寺址)가 있다. 또한 주변에는 태종무열왕릉을 비롯하여 김인문(金仁問)과 김양(金陽)의 무덤이 있고, 태종무열왕릉과 같은 직선상에는 태종가(太宗家)의 가족묘역으로 추측되는 4기의 고분이 있으며, 이들 고분군의 북쪽 서악서원의 뒤쪽 산허리에 또 일군의 고분군이 있는데 진흥왕릉, 진지왕릉, 문성왕릉, 헌안왕릉이라고 전하고 있으나 능묘의 양식이나 위치, 그리고 사실 등으로 미루어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홍규공 설총, 개국공 김유신, 문창후 최치원을 위한 서악서원이 있으며 애공사지의 서쪽엔 법흥왕릉이 있다.
수정 같은 하늘을 이고 있는 산을 오르면서 생각했지만 야생화 답사보다는 유적지 답사가 어울린다 싶은 초행길에 일행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서 한발 한발 오르는 선도산은 또 하나의 인내심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겨울이 한창인 지금 땅속에서는 2018년을 꿈꾸는 꽃들의 싹이 움트고 있을 것이고 나무들도 씨눈을 맺으면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경주의 거봉이신 박목월 선생의 詩나 김동리 선생의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선도산을 오르는 자체가 신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좀 이른 시기에 답사를 한 탓에 겨울을 이기고 올라오는 야생화는 보지 못했지만, 몇 해 전에 산불로 인해 훼손된 자리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그 자리엔 아픔의 상처를 딛고 움틔울 꽃과 나무가 있다는 사실로 인해 행복한 발걸음을 옮긴 오늘은 선도산 아래 주막집에서 막걸리나 한잔 했으면 어땠을까? 박성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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