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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되었지만 찰턴 헤스턴이 미켈란젤로로 나오는 '아거니 앤 엑스터시'는 지금도 화가의 삶을 다룬 영화들 가운데 수위로 꼽힌다. 우리말로 하면 '고뇌와 환희'로 번역할 수 있겠는데,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를 그리면서 겪게 되는 고통과 희열을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미켈란젤로가 화가가 아닌 조각가로 방점이 찍혀져 있다는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 '천지창조'라는 프레스코화로도 유명하지만 '피에타' '다비드상' 같은 조각으로 더 유명하고, 스스로도 화가보다는 조각가로 불리길 원했다고 한다. '회화는 영혼과 반대인 물질을 덧칠하거나 추가하는 예술이지만 조각은 제거하거나 깎아냄으로써 내적인 해방을 가져오고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에서 조각에 대한 그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정말 그의 조각은 입이 벌어질 정도로 역동적이고 자연스럽다. 이는 미켈란젤로가 천재 조각가이기도 하지만 조각의 재료가 되는 대리석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석회암의 일종인 대리석은 세공이 쉬워서 복잡하고 섬세한 조각이 가능하다. 표면은 얼마나 매끄러운지 피그말리온이 여인상을 조각하고 조각품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도 과장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화강암은 돌 자체가 워낙 단단하여 대리석만큼 섬세한 조각은 어렵다. 서양의 조각품처럼 조각하다가는 돌이 깨지고 부서져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화강암이 많다고 해서 유감일 것은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좋은 수질이 바로 화강암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석회암이 많은 유럽이나 중국은 석회 성분이 물에 녹아 탁하고 물맛이 좋지 않아 맥주나 차(茶)가 발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석회암과 화강암은 물맛 뿐 아니라 깃들여 사는 사람들의 성향까지 변화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석회암은 심해 생물이나 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이고 화강암은 땅 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식어서 이루어진 화성암이다. 그러니까 암석이 만들어지는데 하나는 물이, 다른 하나는 불이 작용한 것이다. 퇴적은 느리게 일어난다. 모래와 진흙 같은 작은 입자는 차곡차곡 쌓이고 오랜 압력을 받아 견고하고 단단해진다. 백여 년 동안 짓고 있으면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이 생각나는 돌이다. 화강암은 마그마의 냉각으로 이루어졌으니 그 만들어진 과정이 빠르고 조급한 우리 민족의 성정을 닮았다. 하지만 화강암은 열기와 뜨거움을 견뎌낸 돌, 내부에 불의 기운을 간직한 돌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거리마다 넘쳐나던 붉은 물결이나 작년 겨울에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이 생각나는 돌이다. 조급하지만 단단하고 강인하며 열정적인 민족성이 화강암 같지 않은가.

 

물과 불이 만들어낸 아득한 시간
누구는 돌속에서 영혼을 보고
누구는 부처를 꺼내고
우주적 순환 안에서 보는 순수


하지만 어느 돌이든 돌 그 자체에 좋고 나쁨이 있을 리 없다. 돌들은 저마다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 조각이든, 건축이든, 공예든 그 고유의 성질을 북돋우고 특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이용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사실 모든 돌의 기원은 아득한 지구의 시간대와 깊숙한 지구의 심장에서 하나이다. 돌은 불 속에서 만들어져 물속에서 다듬어진다. '바윗돌 깨뜨려 돌덩이, 돌덩이 깨뜨려 돌멩이, 돌멩이 깨뜨려 자갈돌, 자갈돌 깨뜨려 모래알'하는 동요도 있듯이, 돌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래와 흙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모래와 흙은 오랜 시간 쌓이고 쌓여 다시 바위와 돌이 되니 속도는 아주 느리지만 돌도 물처럼 순환하는 셈이다. 그 지구적, 혹은 우주적 순환 안에서 우리는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는 윌리엄 브레이크의 '순수의 전조'란 시를 이해할 수 있다. 한 알의 모래는 한 개의 돌이고 한 덩이의 바위이고 바위 속에 갇힌 영혼이다. '돌 속에 갇힌 영혼을 해방시켜주었다'는 미켈란젤로의 생각은 바윗돌에 부처를 새긴 신라시대 석공의 생각과 한가지이다. 그들은 사실 부처를 새긴 것이 아니라 돌을 깎아 원래 돌 속에 있던 부처를 캐내고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고대인의 주술적, 예언가적 기질을 물려받은 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이성복 '남해 금산'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대홍수로 인간이 멸망하기에 이르렀을 때 살아남은 데우칼리온과 그의 아내 피라가 돌을 뒤로 던져 인간을 다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들은 어머니의 뼈를 뒤로 던지라는 신탁을 받고 어머니란 대지이고, 대지의 뼈란 바로 돌이라고 풀이하여 신탁을 올바로 수행할 수 있었다. 인간은 원래 대지의 뼈인 돌이었다. 돌은 결국 부서져 흙이 되므로 인간이 흙으로 빚어졌다는 신화적 상상력과 다르지 않다. 그리하여 돌. 돌고 돈다. 아득한 물과 불의 시간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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